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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2년 11-12월] 러시아 및 북유럽 12일간의 여정 조회 868 작성일 2012-06-18








2002년 7월 10일 수요일 맑음

여행사에서 단체로 가는 예정된 여정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다. 설레이는 마음은 비행기보다 먼저 하늘을 난다. 아침 8시 잠실롯데호텔에서 출발하는 신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오르니, 9시 10분경에 국제선 항공 터미널에 도착하다. 10시 30분에 탑승수속을 마치고 12시 50분발 모스크바행 에어로풀롯트에 오르니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지체하여 13시 45분에 이륙하다.





모스크바 세레미터 제1공항까지는 8시간 45분이 걸려 22시 30분에 착륙하다. 모스크바에는 세계로 향한 항로를 따라 5개의 공항이 있으며, 대륙으로 이어지는 9개의 철도역이 있다. 한반도의 100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나라, 그 나라 수도의 도시계획이 시원해서 좋다.

입국수속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여권은 물론 지참하고 있는 외화와 한화의 명세를 별도의 카드에 기록하여 제시케한다. 출국시에 돈의 흐름을 파악하여 만일 재화가 불어났다면, 여행목적 이외의 상행위로 간주하여 부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인천에서 해가 지는 쪽으로만 날아왔으니 아직 해는 서쪽 하늘에 떠 있다. 서울에서 새벽 여섯시에 해를 보고 저녁 열한시에 모스크바의 서쪽 하늘에 해지는 모습을 보니 내 생애에서 가장 긴 낮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시내 한식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니 기내에서 먹은 점심과 저녁하며, 하루에 도합 네끼나 식사를 한 셈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에어백을 만나 심하게 흔들린 탓인지, 출출한 뱃속으로 구수한 쌀밥이 잘도 넘어간다.

모스크바에는 자작나무와 침엽수의 수풀이 있을 뿐 산이 없다. 이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걸출한 영웅들의 동상이 메인도로의 길을 막고 서 있다.

한 때는 세계사회주의의 이상향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의 수도, 레닌의 거리에는 견고한 콩크리트 형체만 남아있을 뿐, 거리로 향한 베란다에는 남루가 넘쳐 흐른다. 예술가와 시인들의 동상이 그들과 인연깊은 거리나 건물 앞에 서서, 헐벗은 러시아 문명을 질타한다. 투루게네프와 푸시킨, 고골과 토스트에프스키의 동상의 뒷모습에서 화려했던 러시아의 역사를 읽는다. 레닌의 혁명동지 막심 고리끼의 동상은 어디 있는가?

서울은 밤 12시, 시계바늘을 5시간 뒤로 돌려 모스크바 시간으로 맞추니 오후 7시, 아직도 훤한 초저녁이다.





1989년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로 냉전의 울타리가 끊



어지지 않았다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동토의 땅에 어찌 내가 와 있겠는가?

교외의 모스크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코스모스 호텔에 체크인하다.











2002년 7월 11일 목요일 흐림

호텔은 밤새 잠들지 않았던 듯 빠찡꼬는 돌아가고, 로비의 스탠드바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술손님들이 환담을 나눈다. 빈 의자에 아무렇게나 엎드려 졸고 있는 러시아 아가씨는 새벽 손님을 기다리는가?

밤새 소낙비 한줄기 지나간 듯 새벽 공기가 싱그럽다. 길 건너 공원에 세워진 초승달 모양의 첨단에는, 금새 하늘로 향해 날아갈 듯이 조각된 우주선 모형의 기념탑과, 높이 537미터의 모스크바 타워가 하늘높이 솟아있다. 캐나다 토론토 방송타워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며, 그 두 번째가 모스크바 타워이다.

간밤에 투숙했던 코스모스 호텔은 입구에 오성급 별을 달지 않았을 뿐, 쾌적한 위치에 자리한 최상급의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바라본 모스크바 시가지는 끝이 안 보이는 수풀 속에 고즈넉하다. 역사이전의 모스크바는 원시림에 덮인 대평원이었으리라.

이 도시의 역사는 1147년에 시작되며, 한 때는 몽골의 따따루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었다.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요새를 뜻하며, 2km에 이르는 망루에는 11세기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15세기경에는 석회석의 흰 벽돌이었다가, 19세기 말에 현재와 같은 붉은 벽돌로 성을 쌓았다. 크렘린궁 안에는 15세기에 건축된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 하원격인 ‘두마’가 있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이었던 레닌과 스탈린에서부터 흐루시초프와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곳을 거쳐갔다. 현재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이 이 곳에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크렘린에는 작고 큰 러시아 정교회가 있으며, 사원의 황금빛 돔은, 크렘린의 상징처럼 하늘을 향해 불꽃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

양파머리 모양의 바실리 사원에 둘러싸여 있는 ‘붉은 광장’은, 처음에는 ‘아름다움’이란 의미를 지닌 광장이었으나, 볼세비키 혁명 기념일이나 노동절 행사 때, 붉은 현수막과 깃발들로 붉은 물결을 이루어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혁명의 영웅을 모신 지하궁전에는 레닌이 잠자듯 누워있다. 1917년에 혁명을 완성하고, 1924년에 졸하니, 옹근 80년간을 죽어도 썩지 못하고 ‘미이라’의 형태로 누워있는 것이다. 실내의 조명도 6룩스, 실내온도 섭씨 20도, 습도 50%의 조건 아래서 레닌의 주황빛 작은 손은, 금새 깊은 잠속에서 깨어나, 열광하는 노동자, 농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할 것 같다. 만일 인간의 죽음이 육신에서의 영혼의 분리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면, 레닌은 영혼을 두고 온 육신이 욕스러워 안식을 얻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것 같다. 레닌의 손이 작은 것으로 봐 노동자, 농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지략가였을 것 같다.

레닌의 평등한 사회로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붉은 광장’ 동편에 길게 자리한 굼백화점 쇼윈도우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부채질하는 세계의 유명 브랜드들로 채워져 있어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요, 졸부들에게는 허영의 산실이다.





서유럽에서는 영어 단어 몇 개쯤 알고 있으면, 아쉬운대로 의사를 소통할 수도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언어의 벽이 높아, 손짓 몸짓을 해서야 겨우 의사를 전달한다. 뱃속에 들일 때 돈을 받았으면, 밖으로 내밀 때는 돈을 받지 말아야지, 겨우 찾은 화장실은 루불화가 아니면 들지도 못한다니 참을 수밖에... 아마도 외국 관광객이 한국을 찾는다면, 가장 반가운 것이 화장실 무료사용일 것이다.

시내를 관통하는 모스크바 강 한가운데, 웅비하는 피터 대제의 동상이 흔들리는 배위에 바람을 가르며 서 있다. 그는 의학과 수학, 공학 등 다방면의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으로,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발트해가 있는 페테레스부르그로 천도한 황제이며, 그로 인하여 러시아는 세계속의 강국으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7월의 모스크바의 날씨는 믿을 수가 없다. 파란 하늘을 열어보이다가도, 시커먼 구름 몇 점 모여 들기 시작하면 금새 소낙비가 내린다. 아스팔트 도로가 하루에도 몇 번씩 세수를 하고, 작열하는 햇빛에 하얗게 바래인다.

학문의 요람지 모스크바 대학교는 1755년에 개교하여 247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스탈린이 통치하던 시대인 1949년부터 1953년에 건축한 현대식 건물로 32층, 241m 높이의 타워건물이다. 순수과학분야 19개 대학에 300여 전공학과가 있으며, 학생수 26,000명에 세계 10위권에 드는 우수한 대학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역대 서기장 중 기행으로 이름난, 흐루시초프는 1961년 유리 가가린 알렉세이비치가 조종하는 유인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려놓고, 유엔총회에서 기염을 토한 적이 있었다. 세계는 놀랐었고, 특히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은, 과학적인 성과의 비밀을 캐는데 혈안이 되었었다. 모스크바 대학의 유능한 수학자들은 2진법을 이용한 전자계산원리를 도입하여, 신속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음이, 인공위성분야에서 미국을 앞설 수 있었던 원인임을 알아냈다. 가가린의 인공위성의 궤도비행 성공이후, 자유우방국가에서는 수학교육에 집합과 진법의 내용을 도입하니, 일선 학교의 수학교사들은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기에 급급하였다.





모스크바 대학교에는 음악대학이나 미술대학이 없다. 예능대학은 별도의 단과대학으로 운영하며 안내를 맡은 김선생은 차이코프스키 음악대학에서 이론음악분야의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모스크바 대학의 방대한 부지가 부럽다.정치적인 과도기에 학교운영이 어렵기는 해도, 순수학문분야에서 창의적인 연구실적으로, 우수한 대학으로 평가받으니 부러운 일이다. 한국의 우수한 두뇌집단인 서울대학교가 순수학문의 연구분야에서 세계순위 99위에 머물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보다 오늘의 모스크바 거리는 깨끗하고, 여기 저기 공사도 하고 있어 미래가 밝아보인다. 알콜중독자인 옐친이 통치하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부도사태인 모라토리엄을 선포했었는데,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경제사정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중동 산유기구인 OPEC이 원유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러시아는 우랄산맥 넘어 세계 원유가를 좌우할 수 있는 유전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전쟁기념관에는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모스크바 전투 등 이차대전 당시 치열했던 전투장면을 절묘한 원근화법으로 그린 전장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앞은 실물들로 사실감을 나타내고 뒤는 그림인데, 어디에서부터가 그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전장의 매캐한 연기냄새가 나는 것 같다. 승자는 환희작약하고 패자는 절망의 늪속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비장감과 영웅심을 고취하는 전장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요, 패자의 정의와 비참함을 그려내지 않는다.

광장에는 프랑스가 이집트의 룻소르 신전에서 약탈하여, 파리의 콩고드 광장에 세워놓은 오벨리스크를 닮은 기념첨탑이 높이 솟아있다. 까만 대리석 첨탑에는 전사자의 이름이 감감한 꼭대기까지 깨알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애국의 이름으로 소비에트 연방에 바쳐진 이름들이다. 독일군의 침공에 맞서 소비에트는 레닌그라드(페테레스부르그)전투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결사항전하여 독일군을 패퇴시켰다. 단일 전투에서 100만명이 희생되었으니,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전투였다. 1차대전이 끝나고 스탈린의 중공업정책이 탱크나 비행기를 양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혹한기 독일군은 탱크를 움직일려해도 기름이 없어 무용지물이 되었고, 감출길 없는 하얀 눈 위에 야크기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기념관을 나오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생각은 ‘승리의 허망함과 패망의 슬픔’이었다. 뼈저린 6.25의 상처가 가슴을 파고든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100m가 채 못 되는 ‘레닌의 언덕’에 올라 모스크바 시내를 조망하고 시내에 있는 구세주대성당(러시아정교)에 들리다. 볼세비키혁명으로 성당은 파괴되고, 종교핍박정책으로 겨우 명맥만 이어오다가, 개혁 후 국민들의 성금으로 1997년 재건되었다.

단체관광에서는 일정표에 따른 관광이 있고, 선택사양으로 옵션관광이 있다. 오늘의 옵션 관광으로는 모스크바 서커스단을 관람하기로 했다.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고 긴 행렬은 쉬 줄어들지 않는다. 서커스 시작시간에 맞추어 입장하기는 틀린 모양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퇴근길이 시민들의 발을 묶었다. 어디서나 높은 사람의 행차는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경호원들을 성가시게 한다. 대통령의 안위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어 있는 현실이니 그럴 수밖에.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깊고(지하 100m),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서울의 그것보다 배는 빠르다. 유치원 원생이 되어 가이드를 따라 모스크바 지하철에 승차했다. 민첩하게 타고 내려야 한다. 퇴근길 시민들이 동양의 관광객을 조금은 부러운 듯 바라보고 저희들끼리 웃는다. 저들도 얼마 전에 치른 한일월드컵에서 ‘붉은악마’들의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를 알고 있는 눈치다.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아르바뜨’거리는, 서유럽의 여느 거리와 별다를 게 없었다. 떠돌이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가난한 화가는 초상화를 그린다. 점포밖 카페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고, 해가 져도 훤한 모스크바의 밤을 즐긴다. 뚜루게네프와 푸쉬킨이 어린시절을 보낸 거리이지만 말로만 전할뿐 이 거리에는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뚜루게네프의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그와 첫 대면을 하고, 푸쉬킨의 시집을 읽으면서 산 넘어 미지의 세계를 꿈꾸기도 했었다. 뚜르게네프는 죽을 때까지 모국어 사랑이 극진했던 작가로 기억되고 푸쉬킨의 외증조모는 흑인이었다는 것을 가이드의 설명으로 처음 알았다. 고개숙인 동상의 우수에 젖은 표정은 먼 아프리카 왕조의 핏줄 그리운 향수였을까? 그는 급진적인 사상을 소유했던 시인으로, 짜르 정권 아래서 몇 번인가의 유배형에 처할 뻔 했으나 관계요로의 친구들의 힘으로 모면하기도 했었다.

거리 한복판에 깡통 하나 놓고, 소년은 흘끔흘끔 눈치를 보면서 바이올린을 켠다. 몇 년 전 퀸즈랜드의 다운타운에서 만났던 소년과 무엇이 다르랴!

7월의 모스크바의 밤은 짧고 아르바뜨의 거리는 잠들지 않는다.











2002년 7월 12일 금요일 맑음

모스크바에서 밤 12시 45분에 출발한 열차는 온 밤을 달려 이튿날 아침 9시 30분에 성 페테르스부르그에 도착하다. 내 평생 침대칸 기차를 탈 일이 없었는데, 먼 러시아 땅에서 그 나라에 대접받는 침대칸이 있는 열차를 타 본다. 한여름밤의 침대칸은 찜통같은 더위로 견디기 어려웠다. 4인 1실로 가운데 좁은 통로를 두고 좌우 이층으로 침대가 놓여있어, 오르내리기 힘든 이층은 하늘같은 남편들이 눕고, 아내들은 땅 가까운 일층에 누웠다. 단조로운 레일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이 들었나보다. 코고는 소리를 부러워하며 최면을 걸어본다. 이 침대칸에는 나보다 덩치가 큰 마우저(러시아인) 놈도 자고 갔으려니, 앉아서 가는 것보다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난,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여 모스크바에 가고 싶었다. 젊은 날 가슴 설레이던 시베리아의 낭만이, 간밤의 고역스러운 경험으로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으니 하룻밤 고생으로 열흘 고생을 덜은 셈이다.

페테르스부르그는 레닌이 짜르정권의 썩은 담장을 허물고, 볼세비키 혁명을 완결한 곳이다. 니콜라이 2세와 왕가일족이 비명에 쓰러지니 르마노프 왕조 18대가 끝이 났다.





이 곳의 겨울은 10월 ~ 4월까지 6개월간이며, 봄, 여름, 가을은 짧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따갑다. 철도연변에 버려진 낡은 집들이 한때는 사료창고로도 쓰이고 평원의 잘 다듬어진 초지에는 한 무리의 가축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으련만, 어쩌다 한 두 농가의 노옹이 긴 낫으로 웃자란 풀을 벤다. 버리고 간 초원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짧은 여름 다투어 피어난 풀꽃이 아름답다.

페테르스부르그는 네카강을 끼고 있는 운하의 도시로서, 크고 작은 8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정 러시아의 피터대제가 모스크바에서 이 곳으로 수도를 옮겼다하여 세인트 피터스 부르그라 이름지어 졌다. 운하의 도시라하여 일명 북방의 ‘베네치아’ 또는 ‘암스텔담’이라 지칭하며, 발레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표현한 ‘백조의 호수’는 페테르스부르그 시내의 작은 연못으로 남아있어,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을 봤을 때처럼 싱거워 웃음이 나온다.





왕조 200여년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은 역대 황제의 겨울궁전과 네 개의 건물(에르미타주)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며, 1050개의 전시실과 약 250만 점의 회화, 조각, 발굴품 등이 있어 루브르박물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이태 전 서울 덕수궁에서 ‘르마노프 왕조’의 유물을 전시한 적이 있어 극에 달한 왕조의 화려함을 짐작 하고 있었으나 전시실의 엄청난 유물들을 마주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정작 공개하지 않은 유물들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울까? 쓰러뜨린 왕조의 유산을 고스란히 보존해 온 소비에트가 존경스럽다.

짧은 여름,  햇빛 쨍한 날이 흔치 않아서인지 거리는 웃옷을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조그마한 양지만 있어도 수영팬티 하나만 입고 일광욕을 즐긴다. 여인들이 가슴만 가리고 거리를 활보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것 같다.





6, 7월은 결혼 시즌이라 피터대제의 동상앞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혼부부들이 줄을 잇는다. 동상 둘레에는 이들을 축복하기 위한 꽃다발이 놓여지고, 친구들은 내내 신혼부부와 함께 거리를 행진하며 즐긴다. 러시아인들은 평균 세 번의 결혼을 한다니, 철없이 결혼하고 이혼을 하는가? 살다가 싫어지면 헤어지고, 정들면 시장의 집전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한다. 평균 이혼율이 60%, 이는 러시아 남성들이 가정적이지 못하고, 남녀평등한 사회에서 여성의 여권이 신장되었기 때문이리라.

학문의 본산인 엘교대학교는 순수학문 분야에서 세계 3위를 자랑한다. 세계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1764년 예카치레나 2세가 세웠던 스몰린사원을 관람하고 넵스키 대로의 풍경을 일별한다.

내년이면 이 도시의 나이 300주년이라, 소비에트시절 파괴된 유물들을 복원하는 사업으로 바쁘다. 르마노프 왕조 200년간의 수도였던 페테르스부르그는 동상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그 중 예까치레나 2세의 동상은 해학적이다. 여황제는 능력없는 남편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라, 재위시 영토를 확장하여 러시아의 위세를 떨치기는 했어도 대신들과의 잦은 정사로 아들과의 불화는 깊어만 갔다. 여황제의 동상아래로 대군들이 저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둥글게 앉아있다. 그래도 여황제와의 방사에서는 나를 따를 자 없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표정들이다. 어쨌든 여황제는 베겟머리 송사로 대신들을 나긋나긋하게 주물러 국정을 원활하게 이끌었던 것 같다.

운하로 둘러싸인 공원같은 도시에는 눈을 부비고 봐도 단독주택이 없다. 작고 큰 아파트들만 가지런한 높이로 서 있다. 오로지 피터대제가 처음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을 때 살았던 통나무집 한 채가 역사의 유물로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스탈린 정권하, 핍박속에서 명맥을 이어왔던 이삭사원의 정통성은 엄숙하여 고개가 숙여진다. 하느님 앞에 앉을 의자 없으며, 인간의 육성을 대신할 올겐이 없다. 신도는 선 채로 예배를 보고, 반주없는 육성으로 찬송가를 부른다.





오늘의 옵션관광으로 발레를 관람한다. 페테르스부르그는 러시아 발레의 시원지로서 역사가 깊으며 긍지 또한 대단해서 해외공연에는 아류급이 참가하고 일류 발레리나들은 본고장에서 관객을 불러들인단다. 언젠가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으로 볼쇼이발레단을 초청한 적이 있었다. 운좋게 구하기 어려운 표를 두 장 얻어, 로얄박스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구경을 했었다. 이태리 피렌체의 스칼라 좌에서는 관객의 수준이 높아 머리카락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더니, 서울의 손님들도 그에 못지않아 감기는 눈꺼풀을 치켜뜨느라 고역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 때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돈나 폰테인과 그의 배역으로 누르예프가 열연을 하였었는데, 폰테인의 나이 60이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가늠할 수 없으면, 본고장에서 유명한 발레를 봤다는 자랑 이외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곳에 온 후로 일몰을 본 일이 없다. 밖은 아직도 한낮인데 밤 11시가 지났다.

어제 좁은 침대칸에서 익명의 부부와 잠자리를 같이 하느라 꽁꽁 묶었던 몸을 풀어야겠다.











2002년 7월 13일 토요일 맑음

이틀째 페테르스부르그 관광길을 나선다.

알렉산드라넵스키 사원에는 르마노프 왕조 18대에 이르는 황제와 그 가족들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으며, 그 시대 영웅들의 무덤이 있다. 개화기 비운의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의 시신도 이 곳에 모셨단다. 러시아에도 무덤이 있는가? 붉은 광장의 벽면에 새겨진 영웅들의 묘비명은 보았으나 인민들의 무덤은 볼 수 없었다.





토요일 교외에 위치한 ‘다짜’로 가는 차량행렬이 이어진다. 비록 에어콘도 없는 중고승용차이긴 해도 자못 즐거운 표정들이다. 정부에서 제공한 주말농장 같은 것인데, 월 40달러 정도의 연금수혜자들이 이 곳에서 모자라는 먹거리를 생산하기도 한다. 개혁 후 200평 남짓한 ‘다짜’도 공유화되어 부의 축적에 따라 점차로 고급화되어가는 추세다.

피터 대제의 ‘여름궁전’은 180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공원 안에 있으며, 공원은 위 아래로 나뉘어져 아래쪽 공원의 끝은 핀란드만에 닿아있다. 궁전에 입장하는 관객들을 환영하는 일단의 악사는 눈치빠르게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애국가로 시작하는 민요들을 메들리로 엮는다. 공원안에는 크고 작은 분수가 140여개나 있으며, 1717년 기공하여 1807년에 완공하였다. 분수는 ‘바비콘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의 수차를 이용한 압력으로 뿜어 오른다. 당대의 이름난 수학자들이, 분수의 오묘한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2년간 계산하고 실험하였다. 분수는 그 위치와 크기에 관계없이 높이가 일정하다. 계단을 따라 일제히 뿜어대는 대궁전 분수를 비롯하여 우산분수, 꽃분수, 나무분수 등 그 이름에 따라 분수의 모양도 다양하다. 피터 대제는 여름궁전의 선착장에서 네카 강변의 겨울궁전까지 뱃길로 왕래하였다. 네카강의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핀란드만은 한겨울 얼음과 눈에 덮여 끝없는 설원을 이루니, 육지와 바다의 경계는 없어지고, 여름궁전은 다시 오는 여름을 기다려 긴 겨울잠을 잔다.





페테르스부르그에는 두 개의 개선문이 있다. 하나는 1차대전 당시 프랑스에 승리한 기념으로, 여름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개선문은 2차대전 승리의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페테르스부르그에서는 200만 명의 젊은이가 참전하여 그 중 60여만 명이 돌아오지 못하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의 영광이 개선문이 되었다. 어느 것이나 고대 로마의 개선문을 본 떠 만든 것이라 파리의 개선문을 닮았다. 거리에는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간판이 환하게 웃고 있다. 혁명 후 햄버거를 사기 위해 이들 상점 앞에 길에 줄서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지난 날 소비에트 연방의 영광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생활에 지친 러시아의 노인이 휘청거리는 오후를 걷고 있다.

네카 강에 전시된 6000톤급 ‘오로라 순양함’은 러일전쟁과 2차대전을 겪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그 당시 러시아의 발트함대는 영국의 반대로 스위스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남단 희망봉을 돌아 동해에서 일본 해군과 조우하였으니, 먼 항로에 지친 병사들이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울산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토끼섬에 있는 피터폴 요새를 일별하고 페테르스부르그 핀란드 역에 도착하다.(이 도시에는 행선지에 따라 5개의 역이 있다) 하오의 햇빛이 작열하는 16시 45분에 헬싱키를 향하여 페테르스부르그를 출발하다.

나지막한 구릉에는 러시아 소녀의 발레다리처럼, 곧게 자란 자작나무와 적송나무 숲이 하늘을 찌른다. 더러는 전나무와 포플러나무, 메이폴 단풍나무 숲이 있고, 오리목나무와 가뭄비나무도 가끔 보인다. 마을 입구에는 너도밤나무가 열매를 맺고, 노란 원추리꽃이 정답다. 들판에는 색색의 루핀꽃과 하얀 안개꽃, 영국 국화인 마가렛꽃도 보인다. 들꽃이 저토록 아름다운 것은 공존하는 지혜를 스스로 익혀왔기 때문이리라.

기차는 멈춰 선 채, 러시아쪽의 출국검사가 까다롭다. 외화사용 명세서를 제출하고, 여권의 사진과 본인을 일일이 대조하고 난 뒤에 기차는 서서히 움직인다. 국경은 영토의 경계만이 아니라 경제력의 경계임을 러시아와 핀란드의 국경을 넘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러시아 땅에서는 황무지였던 것이, 핀란드에서는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보리밭이나, 젖이 흐르는 목초지가 되고, 얼기설기 고사목 어지러운 숲은 잘 다듬어진 공원이 되었다. 국가의 재정으로 산림관리원을 부리고, 농업보조금으로 황무지를 관광자원화 하였기 때문이다. 한 때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러시아는 그럴 여유가 없다. 아마도 현재의 푸틴 대통령의 국가경영이 성공하게 되면, 이들 황무지는 관광자원화 되는 날이 멀지 않으리라.

7월의 태양은 북극권을 한바퀴 빙그르르 돌고 지는 듯, 왼쪽에서 쏘던 햇빛이 이제는 반대편에서 쏘기 시작한다. 21시 35분 헬싱키역에 도착하여 교외의 라마다 호텔에 체크인하다.











2002년 7월 14일 일요일 맑음

새벽 호텔 주변의 자작나무 숲 그늘에는 노란 카펫트를 깔아 놓은 것처럼 들꽃들이 피었다. 사계절이 분명한 한반도에서는 봄에 피어야 할 꽃들이 이 곳에서는 여름에 집중되어 피는 것 같다.

핀란드는 북위 60°~70°에 위치한 34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에 총인구 520만 명이 사는 나라이다. 면적의 70%가 산림지대이며 지표의 10%가 호수로 덮여 있다.

기원 전 핀란드에 정착한 민족은 아세아의 흉노족 일파로서 북구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검은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핀란드는 독립국가로서 평화롭게 살아오지 못하고 강대국의 영토확장의 거점으로 식민지배를 받아왔던 나라이다. 12세기 카톨릭 세력의 확장으로 600여 년간 스웨덴의 식민지배를 받는다.





종주국의 관대한 문화정책으로 루터파의 신교가 전국에 보급되고, 헬싱키 대학을 주축으로 학문의 발전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강대국의 각축전으로 러시아에 전 국토를 합병당하는 비운의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자치권을 박탈당한 핀란드인들은 러시아화 정책에 맞서 민족의 대서사시인 <칼레발라>를 복원하고 시벨리우스의 애국교양시 <핀란디아>를 탄생시켰다.

핀란드 독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민족주의 운동은 1917년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을 계기로 핀란드 공화국을 탄생시킨다. 독립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2차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의 침입을 막는다는 구실로 전 국토를 소비에트 연방에 할양당하는 비운을 만났으나 민족적 단결심으로 8년간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하고 신생독립국가로서 오늘에 이르게 된다.

역사의 격랑속에서 부침하던 민족의 비운을, 노래로서 세계에 알린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는 민족의 정서를 뜨겁게 달구었으며, 그의 사후를 기리기 위해 여류 조각가 아일라 힐튜넨은 파이프 오르간을 본 뜬 스테인레스 조각과 함께 시벨리우스의 두상을 부조하여 시벨리우스 공원이라 명명하였다.

한가로운 바닷가에는 백조 한 쌍이 새끼들을 거느리고 모이를 줍고 있다.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서 있는 원로원광장을 지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우뚝 선 헬싱키 대성당에 들리다. 파란 하늘 아래 녹색의 돔과 상아빛 건물이 돋보이다.





루터교회의 본산으로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결혼식이 있어, 내부의 화려한 샹들리에와 파이프 오르간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대성당에 오르는 계단에서 만난 초로의 부부는 한 달째 유럽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달을 더 관광 하고 귀국한다니 그들의 건강과 자유스러움이 부럽다.

시벨리우스 공원 가까운 곳에 있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바위에 구멍을 뚫어 만들었기 때문에 ‘암석교회’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969년 건축공모전에서 당선된 뛰오모 형제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자연을 보존하고 기존교회의 모습을 깨뜨린 최첨단교회로 천연 암석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천장의 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천사의 후광처럼 포근하다. 3000개의 파이프를 가진 파이프 오르간이 있어 이곳에서 시민들을 위한 콘서트도 종종 열린단다.

1952년 하계 올림픽이 열렸던 메인스타디움 입구에는 빠보 누루미의 동상이 달리는 모습으로 서 있다. 그는 올림픽대회를 전후하여 9개의 금메달과 5개의 은메달을 조국에 바쳤다. 우리나라의 김성집 선수가 이 대회의 역도부문에서 동메달을 따 전쟁 중의 경사라 온 국민이 기뻐했었다.

헬싱키에서 가장 번화한 만네르하임 거리의 건물들은 고도를 제한한 듯 가지런하며,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단조롭고 깨끗하다.

일인당 국민소득 25,000불인 부국이면서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긴 겨울 해는 떴다가 얼굴만 보였다가 지고, 알콜중독자가 내일없는 어두운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오후 늦게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마켓 광장의 연안선착장에 도착하다.

생애 처음으로 58,400톤 급의 실야 라인 호화유람선에 승선하여 선상 호텔에 체크인한다.





17시 유람선은 오슬로를 향하여 닻을 올리고 와인을 곁들인 호화 뷔페식으로 만찬을 즐겼으니 나도 갑판위의 이방인들처럼 세계화되었구나! 유람선에는 수영장과 사우나장이 있으며, 영화관과 나이트클럽이 있어 젊은 연인들은 낭만에 젖어 밤을 지샌다. 갑판위에서 밤 10시 30분까지 일몰을 지켜보다가 밤바다의 냉기에 밀려 선실로 들어오니 장엄한 황혼은 간발의 차이로 스러지고 말았다.

바다는 조용하고 선상호텔은 지상의 여느 호텔처럼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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