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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0년 12월] 스페인 가족 여행을 다녀와서 - 김옥경 님 조회 848 작성일 2012-06-18








스페인에는 Spanish Time이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는 출발시간을 한시간쯤 넘겼을때 기장의 미안하다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즐겁게 이륙하고 있었다. 기내의 승객들도 그 사실에 개의치않고 있었고, 아마 나처럼 처음 타본 여행객이 있었다면, ‘왜 안가?’라고 잠시 생각할 뿐 한시간 기다리기는 아무 문제도 되지않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었겠지. 마지막 방문지였던 톨레도 반나절 버스 투어, 거기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초초해하는 여행객의 눈빛과 마주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행사 사무실의 누구도 개의치 않았고 그냥 기다리라는 말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호텔에서 신청한 모든 사람들을 pick up해올 때까지 버스는 떠날 수 없는 것이었다. 다같이 느긋할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들은 느리게 사는 지혜를 알고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을 떠난 18시간 후, 우리 가족은 민박집 쉼터를 찾을 수 있었다.











가우디와의 만남 - 바르셀로나  

숙소가 사그라다 성당 근처에 있어서 걷기 시작했다. 마치 동네 성당가듯이. 가우디 거리의 그 동네 성당은 잘 알고 있듯이 공사중이었다. TV나 책에서 보았던 성당의 외관 뒤로는 공사판이었는데도 사람들은 줄을 서있었다. 맨처음의 느낌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그러나 점점 부드러운 손길로 느껴지게 되는 것은 완만한 곡선때문일까? 우아하고 세련된 길쭉한 손가락 같은 탑에서는 연륜과 포근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그 손에 폭 싸여있었다.

성당을 뒤로하고 까사밀라를 향해 걸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람들도 구경하고 다니다 보니 무리져있는 사람들위로 구불구불 회색의 건물이 보인다. 대관령 길옆의 절벽을 잘 다듬고 창문을 달아 놓은 것 같은 우중충한 분위기. 까사밀라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밝아진다. 햇빛은 건물 중심으로부터 중후한 오렌지빛으로 내부를 훈훈하게 밝혀주고 있다. 가우디는 빛의 마술을 잘 이해하고 있었나보다. 밀라의 저택은 놀이동산 구석구석에 거실, 침실, 식당을 숨겨놓고 있는 형상이다. 놀이동산을 한바뀌 뛰어놀고 나서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내일밤 그라나다행 밤기차를 위해 잠시 들렀던 산츠역에서 택시기사에게, 귀동냥으로 들은대로 ‘빠르끼 구엘’을 외쳐보았으나 역시 실패! 지도를 보여주니 그 역시 ‘빠르끼 구엘!’이라한다. 똑같네 뭐~. 하지만 그의 발음에는 운율이 있었다. 재미있는 말.말.말.

가우디는 직선을 손끝으로 살짝만져서 다 곡선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놓았다. 구엘공원도 역시 굽이치는 곡선위에 반짝이는 타일조각이 동물의 형상으로 자기를 만져보는 사람들과 또 앞에 시원하게 보이는 지중해를 마주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화같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문득 한강변의 63빌딩이 생각났다. 우아한 기와지붕의 곡선을 양옆으로 길게 달아 주고싶었다. 가우디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을 구부려 보게하는 사그라다 성당 근처의 숙소까지 다시 걷는다. 약1시간이 걸렸다. 걸어다녀 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된다. 좀더 가까이에서 그 곳을 느낄수 있고 그로 인해 왠지 알차게 다녔다는 뿌듯함을 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도와 일치하는 도시를 왜 안 걸어보겠는가? 개들이 많은 곳에서 발이 큰 나는 역시 개똥을 밟았다. 그런데 그걸 어떤 여자아이가 보고 기겁을 하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를 약간 이상한 눈초리를 보면서. 순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지만, 여행의 좋은 징조라고 생각해버린 나를 그 꼬마가 알리가 없겠지. 잠자리가 불편해서인지 막내 지혜가 ‘언제 집에 가?’냐며 보챘던 전날밤을 생각하며 작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지상의 낙원 안달루시아로 향하다

알라신이 나라를 창조했을때, 나라마다 5가지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안달루스는 ‘맑은 하늘, 물고기 가득한 아름다운 바다, 잘익은 과일과 여인들’이라는 네가지 소원은 다 이루어졌지만 다섯번째 소원인 ‘좋은 통치’는 거절당했다고 한다. 좋은 통치까지 이루어 준다면, 천국을 지상으로 옮기는 것이되기 때문이었다나? 715년경 이베리아 반도를 거의 주름잡게 되었을 당시 부터 40년동안 한사람만이 5년을 조금 넘었을뿐 6개월을 넘긴 태수가 드물었다고 하니, 이런 전설이 왜 나왔는지 알만하다. 그래도 아랍인들은 ‘좋은 통치’가 빠진 그 곳, 이베리아반도 남부지방을 ‘지상의 낙원’이라는 뜻을 지닌 안달루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맑은 하늘, 푸른 바다만으로도 낙원의 삶을 누릴 수 있었나 보다.









물의 궁전 알함브라

새벽에 내린 그라나다역은 아담했다. 기반은 도시에 두고싶으나 전원생활의 미련을 안고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설레이게해 줄 정도의 규모였다. 그라나다는 석류라는 뜻이라는데 왜일까? 하는 의문을 안고 우리의 목적지 알함브라로 향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다본 밖은 약간의 먼지가 섞여있는 전형적인 소도시다. 붉은 궁전이라던 그곳은 아주 퇴색된 황토빛이라 붉다는 표현에 동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석양에 물든 모습이라면 수긍할 수 있을 것같다. 숨어있는 색이 한층 도드라질 수 있기에. 거울같은 수면, 얌전히 올라오는 물줄기, 잔잔한 물소리, 물소리. 계단난간에 홈을 파 물길을 만드니, 물소리와 함께 오르고 내리게 된다. 잘가꾸어 놓은 사이프러스나무 길을 걸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점점 들어가보니 ‘아! 나무에서부터!’라는 생각과 함께 이 궁궐의 섬세함에 빠진다.

알카사바(요새)를 거쳐 무어인의 마지막 왕조의 터전, 나사리 궁으로 향한다. 정해진 입장시간에 맞추어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메사르궁, 대사의 방을 지나 라이온 궁전에 이른다. 벽면은 조그만 틈도 남기지 않고 기하학적 무늬, 작은 꽃잎, 작은 아치 모양의 기둥들, 촛불의 아른 거림과 같은 아라비아 서예체, 밤하늘의 별이 무리져 어울어져 있는듯한 타일 모자이크 벽면의 일정한 운율이 경이로움과 함께 마음을 가라앉힌다. 치밀한 계산하에 이루어진 그들의 예술은 종교적 염원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궁전안에도 역시 물이 흐른다. 방안까지 물을 끌어들인 그들은 집착이 큰것일까? 물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것일까?

잠시 쉴겸, 알함브라의 분위기도 느껴볼겸, 사자의 궁전에 앉아있다보니 바로 그 사자들에게서 아쉬움이 남는다. 섬세하지도 않고, 생동감도 업다. 알함브라와 어울리지 않는다.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했던가, 동물의 형상에는 미숙함이 보였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두자매의 천정을 본다.

별이 쏟아질것만 같은 화련함속에서 난 석류가 생각났다. 촘촘히 박혀있는 열매속 같기도하고 알알이 떨어져나간 자리같기도 하다. 그라나다의 의문을 스스로 풀어버린다. 물의 궁전 알함브라는 눈덮힌 산, 시에라 네바다의 품속에서 마음껏 물의 미학을 자랑한다. 떠난 무어인들도, 그 후의 스페인 사람도 이곳은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 있나보다. 멀리 아메리카의 눈덮힌 산에도 시에라 네바다의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태양의 해변을 달리다

그라나다의 Hertz 사무실을 나오니 푸른색의 Renault가 대기하고 있다. 푸른빛이 바다를 닮아 마음에 들었다. Auto에 익숙해져버린 남편은 긴장하며 출발한다. 자동차 여행 시작! 고속도로변은 푸석푸석해 보이는 척박한 땅. 그위로 브로컬리를 듬성듬성 뿌러 놓은 듯 올리브 나무가 보이고.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도 남편은 선그라스를 벗었다. 그대로의 풍광을 느껴야 한다면서. 시원스럽게 뚫려있는 도로 곳곳에 ‘Rio’라는 표시가 있는 다리를 여러 번 지나는데, 강에는 물이 하나도 없다. 물이 있을 때가 있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이다.

민둥산, 그와 대비되는 푸른 바다, 햇빛에 눈부신 하얀집들, 건물같은 야자수, 말라가를 지나면서 지도에서만 보던 Costa del Sol을 달리고 있음을 실감한다.







전쟁의 역사가 있는 곳, 지브롤터

La Linea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악!’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높이 솟아 오른 암벽산이 나온다. 빤히 보이는 곳을 빙글빙글 돌다가 스페인 경찰차의 안내를 받으며 국경을 넘는다. 역사 시간에 들은 유트레히트 조약으로 영국령이된 땅. 다닥다닥 붙은 건물, 도로가 장난감 도시같다. 좁은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역시 모든 것을 최소화 해야겠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지브롤터에서는 탕헤르 당일 페리가 없었다. 만페세타를 주고 택시라기 보다는 봉고차에 탔다. 좁은 길을 요리조리 잘도 올라간다. 계속 이야기를 해주는데 들리기도 하고, 안들리기도 하고. 바위산에 깊고 큰 굴이 두개씩이나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석회동굴인 St. Michael 동굴에는 음악회를 열수있는 홀도 마련되어있다. 먼 옛날에는 이 동굴이 아프리카까지 연결되어 있었다고 믿었단다. ‘아프리카 근처에 왔구나!’ 또 하나는 공격용 터널인 The Great Siege Tunnels, 구멍마다 시커먼 대포가 해안을 향해 있다. 밑을 내려다보니 군사적 요충지라는 것이 확 느껴진다. 길고도 긴 서늘한 터널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완성되었을 것이다. 좀더 올라가니 안개속에 싸인 꼭대기에 원숭이들이 사람을 반긴다. 그리고 또 하나, 아프리카 땅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날이건 나쁜 날이건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같이 가까이에. 711년 이땅을 밟고 그 이름을 남긴 이슬람군의 타리크 브누 자드 장군, 그도 여기서 건너온 자신의길을 돌아보고 더 큰 야망을 키웠을 것이다. 타리크산, 아라비아말로 자발 알 타리크, 이말이 오늘의 지브롤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도 가까운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웃한 스페인 마을이다. 밤나들이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지브롤터의 모든 상점은 문이 닫히고 썰렁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유쾌하다. 산책하기도 뭐해서 빠른 걸음으로 호텔로 향하는 길목, 바닷가 벤치 옆에는 크리미아 전쟁때 영국이 가져온 러시아 대포가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다. 지브롤터는 전쟁과 친숙한 곳이었다.







탕헤르의 사다리

알헤시라스의 현대적인 선착장에서 탕헤르행 페리에 올랐으나, 후덥지근한 더위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삼등열차 수준이다. 사람이 많아서 안에는 자리도 마땅치 않았고, 입국을 위해 어디론가 가버린 남펀은 돌아올줄을 모른다. 바닷바람이 심했지만 간간히 보인 돌고래를 벗삼아 왔다갔다 하다 보니 아프리카가 보인다. 배에서 바라보는 항구는 언제나 정다운 법. 사람들을 따라 출구로 나갔는데 입국 스탬프를 하나 더 받아오라고 한다. 남편이 다시 한번 여권을 보여 줘도 다시 들어갔다 오라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참을 기다리면서 밖을 내다보는데 내릴 곳이 보이질 않는다.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 문제의 사다리가 나타났다. 몇 명의 인부가 낑낑대며 배 옆 고리에 사다리를 걸고 있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첫인상은 옛날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사다리였다.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온다. 아까 찍었던 스탬프가 맞았던 것이다. 보지도 않고 무조건 다시 받아오라고 한것이다.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자 택시투어 가이드가 반갑게 말을 걸어온다. 칠천 페세타에 그와 함께 구시가를 걸어다녀 보면서 ‘바로 앞에 유럽이 버티고 있는데 왜 이리도 못살고 있는지.’하는 생각이든다. 물론 화려한 곳은 못보고 하는 얘기지만. 시장 골목 골목에는 혼자만 간신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작은 점포가 많이 보이고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는 식당들이 보이는데 컴컴한 그속에 전기불도 켜지 않고들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수제품 카페트를 구경하고 나니, 말도 잘 안통하는 택시기사를 붙여주고 가이드는 가버리려 한다. 다시 선착장에 가서 또 한팀을 엮으려고 하는 것인지. 간신히 붙잡고 해변도로로 한바퀴 돌았다. 돌아오는 페리호는 사람도 별로 없고 시설도 갈때와는 전혀 딴판으로 쾌적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멀어지는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으니, 갈때의 고생스러움(?)이 위로가 되었다. 탕헤르에 안달루시아풍의 집들이 많은 것은 그라나다의 마지막 무어인들이 안달루시아의 재입성을 꿈꾸며 이곳 아프리카 북부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일까?’







한밤의 침묵, 코르도바 가는길

한나절이 걸린 탕헤르행으로 맏이 지산이가 바라던 바닷가는 들러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코르도바로 향한다. 툭 튀어나온 입이 신경쓰여 내일은 꼭 바닷가에서 놀기로 약속해 보지만 갈길이 멀다. 석양에 물든 바다를 보며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아란훼즈 협주곡등을 들으며 시원한 길을 달리는 사이에 점점 어두워진다. 주위는 이미 캄캄한 밤, 한참을 달렸는데도 이정표는 Antequera, 반쯤 온 것같다. 코르도바는 먼 거리였던 것이다. 늦더라도 우리가 가고 있음을 알리려 했으나, 호텔 직원은 “English . tomorrow



morning .”이라는 말과 뭐라뭐라하는 스페인말뿐이다. 아이들도 잠이 들었다. “다음 signal이 뮈지?”라는 남편 말에 “음. L. 뭔데.” 하며 지도를 뒤적이니, 날카로운 한마디가 날아든다. “그렇게 하면 우리 못가!” ?ucena야...” 잠시 침묵이 흐른다. 낯선 땅, 검은 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 먼거리. 이런 것들이 우리를 긴장시켰다. 미리봐 둔 지도에는 도로번호가 바뀌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향도가 잘 알려 줘야지..” “편하게 코르도바만 보고 가면되지뭐” “이것도 다 추억인데 재미있게 가자” 라는 이성을 되찾은(?) 남편의 말로 차안의 냉기를 몰아내고,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Hotel Selu에 도착한 것은 밤 1시였다. ‘멀고도 외로운’ ‘머나먼 고독의’ 코르도바를 우리는 외로운 도로에서 그 머나먼 거리로 느꼈던것이다.











애꾸눈 왕자와 안달루시아의 신부

일요일 아침의 코르도바 거리는 정결하고 고요하다. 좁은 골목을 지나며 천년이라는 시간여행의 시작에 마음이 설레인다. 호텔에서 10분, 메스끼따에 이르니 장중하고 아름다움에 “너무 좋다!”를 연발하며 성당 주변을 돌아보고 모퉁이에 앉아 사진도 찍는다. 큰강이라는 과달키비르강의 로마교위에 서서 성당을 바라보니 ‘고도’의 분위기에 흠뻑 젖는다. 종소리도 은은하게 퍼지고 있고 강은 크기보다는 센 물살로 크게 느껴졌다. 건너편 요새라는 라칼라오라 앞에서 성당을 배경으로 돌아가며 독사진도 찍었다. 이제는 아껴두었던 성당안의 아치형 다리속으로 들어갈 차례.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문앞을 지키고 있는 정복의 남자가 지금은 미사중이라는 안내문을 보여준다. 아뿔사! 방금 오전 관람시간이 끝났다는 것이다. 두시간이나 기달려야 하다니. 난 이걸보려고 그 먼길을 왔는데. 메스끼따 안에 들어 가보려면 바다로 가야하는 우리의 일정이 너무 빠듯하고 물속에서 놀 시간이 안될 것 같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아치형 다리가 아기자기한 기념접시를 하나 사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755년 지금의 스페인령인 아프리카 북부 세우타 근처 항구에서 이스파이나로 가는 배안에는 애꾸눈 왕자가 있었다. 압바스왕조의 학살을 피해 아프리카 북부를 전전긍긍한 5년 세월 한을 품고 자신의 가문인 옴미아드가와 연고가있는 이들과 규합하기위해 하인 하나를 데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간다. 1년후에 코르도바에 입성하여 서방에 후기 옴미아드왕조를 일으킨 그는 압둘 라만 1세. 여기도 궁예가 있었나 보다. 785년 그리스도교 회당을 개조해서 만든 모스크를 중심으로 코르도바는 서방 이슬람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300년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학술과 예술의 도시로 성장한 코르도바는 ‘안달루시아의 신부’라는 우아한 별칭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나는 그 우아한 신부의 옷자락만 만져 보았을뿐 얼굴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Pepe Beach

다시 그 먼길을 내려간다. 끝없이 펼쳐진 농장 가운데로 시원스럽게 길이 뻗어있다. 어제는 깜깜해서 보지 못한 그 곳을 오늘은 여유롭게 달린다. 가만, 길옆으로 무리져 점점이 늘어져 있는 것들을 가만히 보니 시들어버린 해바라기였다. N-331 도로, 아름다운 해바라기 들판으로 알려진 그곳이었다. 시들어 있어도 좋았다. 게다가 아직 시들지 않은 한 구역을 볼 수 있는 행운도 얻었고, 다시 해변으로 가길 정말 잘했다. 휴가철이라 말라가는 복잡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가다보니 ‘Sevilla por Ronda’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지도를보니 론다를 통해 세비야까지 가는 길이 훨씬 가깝다. 숨한번 크게 쉬고 가지않은 길을 택하니 말라가에서 한참 내려온 에스떼뽀나 근처까지 왔다. 찾아간 해변은 ‘Pepe Beach’라는 작은 표시가 나무로 얼기설기 붙어있는 한적한 바닷가였다.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다니고, 부서지는 햇빛,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안달루시아의 찬수프 가스파쵸와 빠에야를 먹으니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Pepe는 흔한 이름인 호세(Jose)의 약칭이라하니, 우리네 정서로는 ‘철이네 바닷가’라 할 수 있겠다. 한산한 바다에 식당 하나, 소박한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우연한 만남, 세비야

큰 원을 빙글빙글 그리며 산 위로 올라간 꼭대기에서 잠시 내리니 바람도 우리를 빙글빙글 돌게 한다. 세비야는 플라멩고의 본고장이라던가! 론다가는 길은 빙글빙글 플라멩고 무희의 굴곡있는 드레스를 연상시킨다. 산속에 자리잡은 높은 마을 론다. 차창밖으로 보인는 하얀집들이 정갈해 보인다. 세비야 산 파블로 공항을 빤히 보면서 또 한번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주유소에서 길을 물어 도착했다. 3일간 열심히 함께 달린 우리의 푸른차와 이별하고 나니, 벌써 주위는 어둑어둑하다. 꽤 시간이 오래된 것이다. 저녁 8시도 환한 곳이니까, 9시도 넘은 것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야경이라도 볼 겸해서 택시를 타니 11시가 다되었고,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졸음에 취한 아이들은 이제 걷지도 못할 지경이다. 산타 크루즈에서 오징어, 생선 튀김을 사들고 다시 호텔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본고장의 플라멩고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산 파블로 호텔 105호(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에는 또 다른 만남이 있었다. 그 방은 꽃으로 장식된 세비야 골목길을 그린 6, 7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모두 F. NERI라는 화가의 그림이었다. 지산이와 지헤에게 한 그림을 가리키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똑같네!”를 외친다. 유리창의 덧문이 활짝 열려져 있고 창가에는 앙증맞은 꽃이 나란히 장식되어 있는 그림이다. 화사하게 옅은 수채화에는 ‘Finestio sul Jiardino’(아마도 Finestio 정원일까요?)라고 쓰여 있다. 이건 정확한 것입니다. 우리집 안방에도 똑같은 그림이 있으니까. 지금도 가서 한번 보고왔다. 일년이상 걸려있는 그림이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것인 줄은 정말 몰랐었고, 스페인어로 뭔가 쓰여있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다만 화사한 꽃들이 좋았을 뿐이었는데… 참으로 고마운 여행의 선물이 되었다.  









마드리드의 푸른들,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더 오래된 고도들을 보아서일까? 별 감흥이 없다. 아니, 상대적으로 약했다. 왕궁의 화려함에 또 한번 열강이었던 스페인을 생각했다. 아참, 프라도 미술관이 있었지. 길거리의 상점처럼 사람들과 가까이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벨라스케스, 고야의 검은 그림들을 보았다는 안도감(?).

확실히 검은 분위기의 그림들은 이태리나 플랑드르 지방 화가의 방에 걸려있는 분위기와는 달랐다. 비애, 눈물, 깊은 사색, 한등으로 표현된 느낌이 나에게도 전달된다. 그림들을 보면서 화가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림은 상상력을 부르는 이야기 보따리인 것이다. 나의 미술공부는 이제 시작되는 것일까?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그림이 두점이나 있다. 고야와 루벤스의 것. 대지의 신, 가이아와그의 아들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 사이에 태어난 사투르누스, 그보다 먼저 태어난 자식(티탄족)을 잃은 어머니의 복수심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세력을 잡게 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자식을 두려워하게된 나머지 계속해서 자식을 잡아먹는 아비가 된다. 그런 방식으로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법, 결국 자신의 아들 쥬피터에 의해 제거되는 운명이 된다.

여행을 떠나기전,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에 수록된 벨라스케스, 고야등의 그림을 보여 주었더니, 지산이는 “엄마, 그 아들 잡아먹는 그림 어딨어?” 하며 기억을 되살린 비속살해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기에 그 흔적과 이야기가 많다. 보이다가도 없어져 버리고 말았던 토성의 띠를 관찰하던 갈릴레오의 한마디. “사투르누스가 아직도 자식을 잡아먹고 있나?”로 Saturn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하니까. 그래도 부자의 인연은 끊을 수 없는 것인지, 목성(Jupiter), 토성(Saturn), 천왕성(Uranus), 삼대가 아직도 나란히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나 보다.







톨레도의 달팽이

엘 그레꼬의 폭풍전야와 같은 ‘톨레도 경관’이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서와 같이 사람들을 세로로 쭉~ 잡아 당겨놓은 듯한 독특한 분위기와는 달리, 도시는 밝고, 품위있어 보였다. 운치있는 좁다란 골목안 공방에 진열되어 있는 접시들은 너무도 우아하다. 탐이나서 가격을 물어보니 10만 페세타, 60만원. 가격이야 어쨌든 톨레도에 어울린다. 부지런히 줄지어 따라가니 성당이 나온다,

Catedral. 성당안은 역시 금으로 장식되어있다. 세비야의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분위기는 좀 다르다. 금으로 떡칠한 것같은 인상이었던 세비야와는 달리 은은한 맛이 있다. 관광버스는 마지막으로 금은 세공을 전문으로하는 기념품가게로 우리를 내러 놓는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로 돈키호테와 산초가 아담하게 새겨진 접시를 두개 사와서 버스 옆에서 기다리는데, 푸석푸석 마른 키작은 잡목에 달팽이가 신기하게도 다닥다닥 떼지어 붙어있다. 간혹 건조한 공기를 피해 얇은 막을 치고 나무에 붙어있는 달팽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달팽이 무리가 ‘톨레도 경관’의 기묘함을 다시 되살려준다.











여행의 선물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지니 자연히 이야기 보따리가 두둑해 지는 것이 여행의 소득이겠다. 우리 집 옆 호텔 빌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재래시장으로 동네 수퍼로 오가는 것을 본다. 그들의 서울생활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여기에 터전을 두고 있는 우리네 보다는 서울 구경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일상 생활을 여행처럼 할 수 있는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갈 수 있기에 언제나 가지않는 것이다. 난 아직 창덕궁도 가보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궁궐이 훨씬 더 커보이고 가깝게 느껴진, <우리 궁궐 이야기>란 책을 알게 되었다. 옆에 끼고 나서 볼 것이다. 내 일상에 윤활유가 될 것이기에..















◎이 글은 저희 원여행클럽을 통해서 스페인 가족여행을 다녀오신 김옥경 사모님께서 써주신 것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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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01년 01-02월] 가족전문여행사로 거듭 태어나려 합니다 2012-06-18 419
41 [2001년 01-02월] 새천년 복 많이 받으세요!!! (1월호) 2012-06-18 427
40 [2000년 12월] 스페인 가족 여행을 다녀와서 - 김옥경 님 2012-06-18 847
39 [2000년 12월] 고객이 보낸 마음의 편지 - 문형 어머님 2012-06-18 330
38 [2000년 12월] 춥지만 따뜻한 겨울입니다. 2012-06-18 400
37 [2000년 11월] 고객이 보낸 마음의 편지 - 원도 님 2012-06-18 343
36 [2000년 11월] 1만 가족 모시기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2012-06-18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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