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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2년 01-02월] 신승근 기자님의 로마 여행기 조회 603 작성일 2012-06-18








“왕따당하지 않을까요?”

“정말 괜찮겠어요? 나홀로 여행자가 몇명이나 되는데요.......”

로마로 떠나기 보름전,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애초 계획은 자신만만했다. ‘원여행클럽’에서 <로마껴안기>라는 자유여행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두 자리 비워달라”고 전화했다. 2001년 11월 초순, 첫 딸이 태어나 변변한 여행도 못한 채 한 해를 마감할 처지라, 한참 몸이 근질거릴 때였다. 마침 직장에서도 남은 연월차를 소진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장기휴가를 낼 명분도 생겼다. ‘기내식 한번 먹어보자’는 충동이 이성을 압도했다. 아내도 선뜻 동의했다. 그런데 출발이 임박하자 모성의 끌림을 떨치지 못한채 갈등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가겠다고 여덟달 된 딸아이 젖을 강제로 떼? 못할 짓같아….” 결론은 “당신 혼자 가면 안돼?”였다. 결혼 5년차. 아내와 동행에 길들여진 나도 한풀 꺾였다.





사실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유적지 앞에 잠깐 내려 사진찍고 다음 장소로 튀는 ‘메뚜기식’패키지 여행의 한계를 절감해온 탓이다. 10박 11일, 호텔방과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119만원. 더욱이 내 맘대로 로마를 휘젓고 다닐 수 있다는 데…. 중세 이탈리아의 생활상을 생생히 살려 낸 <갈릴레오의 딸>을 읽은 뒤 마음 한구석에 간직했던 ‘로마를 속속들이 느끼고 싶다’는 바람을 충족시켜 줄 절호의 기회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얼마나 준비를 해왔는데, 이제와서…. 아쉬웠다. 하지만 혼자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럴듯한 취소 명분이 필요했다. 하지만 해법은 없었다. 이미 휴가계획서도 냈는데…. 무슨 망신인가.





출발 일주일전, ‘원여행클럽’ 김윤경 주임의 “아직 입금이 안돼서”라는 전화 한통에 별 저항도 못한 채 덜컥 계약금을 냈다.

‘어차피 저지른 일…. 일단 부딪쳐 보자. 애초부터 자유를 원했잖아.’ 스스로를 세뇌하며 서점과 신문사 자료실을 뒤졌다. 퇴근 후 밤새워 읽고, 메모하고, 중단됐던 계획서도 다시 짰다. 몇가지 수칙도 마련했다. 경비는 절대 200만원을 넘기지 않는다. 여행사에 119만원을 냈으니, 사용가능 잔액은 81만원. 낭비를 막기 위해 40만원은 리라, 40만원은 달러로 환전하자. 로마와 인근 다른 도시를 넘나들며 변화를 준다. 당당하게 행동하자. 아는 만큼 보인다. 철저히 공부하고 무조건 발로 뛰자….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 12월 14일, 금요일

‘한눈 팔면 죽음’이라는 아내의 경고를 뒤로 한 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인천공항서 김주임과 다른 여행객을 만나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11시간 동안 고단한 비행이 이어졌다. 탑승과 동시에 날렵한 승객들을 통해 먼저 한수 배웠다. “무조건 맨 뒷좌석에 앉아라. 발 쭉뻗고 누울 안락한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런 노하우를 미처 터득하지 못했다. 빈자리를 놓고도 쭈뼛거렸다. 그러나 비었다 싶으면 무작정 드러눕는 당당함. 혐오감을 없앨 취침 자세만 터득한다면 비지니스 클래스보다 더욱 편안한 여행을 보장받을 수 있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8시간을 거슬러 오른 그 곳은 금요일 초저녁. 잠시 잊고있던 고민이 떠올랐다. 일면식도 없는 다른 여행객들과 관계 설정 문제. 출발 전날 ‘룸메이트가 40년생 어르신’이란 말을 들은 나는 솔직히 걱정부터 앞섰다.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야 할지, 까탈스런 성품이면, 동행을 요구한다면…. 그러나 기우였다. 룸메이트 박개언 선생님은 스페인에서 다년간 살으셨고, 로마도 초행길이 아니셨다. 남을 적절히 배려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신사셨다. 오히려 행운이었다.







◑ 12월 15일, 토요일

로마의 첫 아침은 굵은 빗줄기와 함께 시작됐다. 시차 탓에 오전 5시 눈을 뜬 나는 서둘러 계획을 수정했다. 비를 피하면서 성공적인 출발이 가능한 곳은 어딜까? 월요일로 예정했던 바티칸박물관과 그 주변지역을 앞당겨 들르자.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자유여행의 핵심인 대중교통 이용법을 익히는 데도 적격일 것 같았다.

‘나 혼자 잘해낼 수 있을까?’ 아침식사 시간 내내 불안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 당당함과 자신감. 두 단어를 되뇌이며 로마지도와 안내책자 몇 권, 컵라면을 챙겨들고 호텔방을 나섰다. 호텔 로비에 아이를 동반한 몇 가족이 웅성이고 있었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듯. 마침 로마껴안기를 취재중인 <뚜르드몽드> 임학현 기자가 내 계획을 물은 뒤 동행을 제안했다. 치안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 없었던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몇 가족이 동참, 어느새 10명의 대부대가 만들어졌다.

빗줄기를 가르며 로마 중심가로 진입이 시작됐다. 714번 버스를 타고 떼르미니 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탄 뒤 씨프로 역에 내려 바티칸박물관 입구를 찾는 것이 첫 과제. 내달리는 자동차들이 튀겨대는 빗물 세례를 몇 차례 받고 겨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승차권 개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무임승차한 듯한 쑥쓰러움이 엄습했다. 로마인들이 눈치밥을 주며 나만 노려보는 것 같아 뒷꼭지가 계속 후근거렸다. ‘어찌할꼬....’ 결국 선의를 내비치려 표를 한 손에 든 채 버텼다.





아주 어색하게. 20분쯤 지났을까. ‘로마의 서울역’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눈치껏 길을 물어 지하철 승차까지 성공. 집시와 소매치기에 관한 수많은 경고를 가슴 깊이 새긴 나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스프레이 낙서 때문에 안을 들여다보기조차 어려운 전동차 속으로 온갖 피부색 사람들이 마구 빨려드는 상황에서 전방위 방어는 불가능했다. ‘여권과 달러가 든 복대만 사수하자.’ 한결 평온해졌다. 지하철 내부를 탐색했다. ‘이거 완전 쓰레기통 같군. 우리 전철은 얼마나 깔끔한데.’ 해외에선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했던가. 피식 웃음이 났다.





오전 11시쯤, 바티칸 박물관 앞에 안착하자 가슴이 뛰었다. 이제 얼마든 자유롭게 로마를 활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바티칸에서만 꼬박 하루를 투자할 마음으로 로마에 왔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 1시 30분에 폐장이란다. 경비원에게 다가가 “책에는 3시45분으로 적혔던데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1시30분까지라는 대답뿐. 마음이 다급해졌다. ‘많이 보는 것은 중요치 않다. 꼭 봐야 할 것만 제대로 보자’고 다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이집트관과 그레고리아이교도관을 거쳐 라파엘의 방으로 내달렸다. 미술평론집에 단골로 등장하는 ‘아테네 학당’과 ‘밀바안 다리전투’, ‘보르고의 불’ 등 명화들을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30분 이상 라파엘과 그 제자들이 완성한 프레스코 벽화를 꼼꼼이 살피며, 책속 설명이 이해라도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석하게 ‘보르고의 불’은 보강공사중. 흰 천막이 가리고 있었다.





이어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향했다. 예배당에 들어서자 일단 의자 한 귀퉁이를 꿰차고 앉았다. 최후의 심판을 중심으로 좌우 벽면을 장식한 12편의 그리스도 일생, 예배당 천정을 빼곡이 메꾼 33편의 구약성서 이야기 등 널린 대작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의도였다. 가져간 책과 대조하며 한폭 한폭 채색기법과 의미, 제작배경을 살폈다. 5백년전 거장 미켈란젤로, 그의 후계자 페루지오와 보티첼리 등과 교감을 시도했다. 어느덧 종교와 거리가 먼 내 영혼이 떨려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갈릴레오의 딸>에 생생히 묘사된 종교재판 장면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랜시간 천장을 치켜보던 나는 뻣뻣해진 목덜미를 만지며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바티칸의 높은 천정과 드넓은 벽, 호화로운 채색과 장식품들,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지 잊지 말자.’ 의식적으로 채근하며 겨우 감동에서 벗어났다.









바티칸을 나서자 허기가 몰려왔다. 바로 그때 로마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라는 외마디 인사말과 함께 18,000이라는 숫자가 선명한 전단지를 내밀었다. 음식점 호객꾼이었다.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몇 가지 확인을 거친 뒤 못이기는 척 따라갔다. 한끼당 1만리라를 넘기지 않는다는게 철칙, 하지만 첫날 점심은 로마인 틈에서 그들 방식대로 먹고 싶었다. 자그만 식당, 메뉴판을 열심히 살폈지만 뭐가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낯익은 단어를 선택했다. 스파케티는 입맛을 돋궜다. 문제는 스테이크. 맛은 그런대로 견딜만. 하지만 피가 흥건한 날고기가 붙어있었다. ‘바빠서 덜 익혔는지, 원래 이렇게 먹는지….’ 허나 어쩌랴. 주인은 아예 영어를 못하고, 나 또한 영어가 짧고…. 더 군말을 할 수 없었다.





한숨 돌린 뒤 산탈제로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얇고 넓적한 붉은 벽돌을 안팎으로 겹겹히 쌓아올린 축성술, 현대식 포탄에도 쉽게 뚫릴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요새를 271년에 만들다니….’ 몇백년된 석조 건축물 하나 제대로 남지 않은 우리 현실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배치된 50여개 방은 예외없이 화려한 성화로 치장됐다. 유럽 대륙을 지배한 로마제국과 교황의 권위, 그 현실적 힘과 종교적 신념이 한데 어우러진 상징적 공간이었다. 성 꼭대기에 오르자, 땅꺼미 내려앉는 로마전경과 테베레 강 주변 고택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전쟁의 흔적을 잊고 중세의 아름다움에 깊히 빨려들었다. 겨울철이라 곧 어둠이 밀려왔다. 천사의 다리를 건너 고풍스런 가구점과 골동품상점이 밀집한 코로나리 거리의 정취를 호흡하며 나보나 광장까지….  지도 한 장에 기대 빠르게 걸었다. 피곤에 겨운듯한 아이가 보챘다. 아버지가 들쳐메고 뒤따랐지만 더이상 행군은 무리. 나는 광장 옆 성당 산타그네세 인 아고네로 들어가 딸과 아내의 건강을 빌며 초를 밝혔다. 나홀로 여행에 대한 미안함을 속죄하듯.





이제 호텔 귀환이 과제였다. 테르메니 역까지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 베네치아 광장에 715번 버스를 타면 된다는 정보에 따라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드넓은 광장에서 정확한 승차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 유비무환, 아침 일찍 호텔 종업원에게 물어 위치를 표기한 지도를 행인들에게 들이밀었다. 그들은 아주 친절히,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줬다. 결국 호텔 반대쪽에 도달해 다른 버스로 거슬러 올라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하지만 모두들 마냥 즐거워 보였다.









<신승근 기자님의 여행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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