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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3년 01-02월] 러시아 및 북유럽 12일간의 여정(마지막회) 조회 2620 작성일 2012-06-18
















2002년 7월 15일 월요일 맑음



거대한 엔진소리와 선미의 물이랑 소리뿐, 호화유람선의 미세한 진동이 등허리를 타고 오른다. 새벽 4시 30분, 한여름 북구의 태양은 언제 떠올랐는지, 자욱한 안개를 걷어올린다. 아침 갈매기 날고, 작고 큰 섬들의 그림같은 집들은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니 그대로 카렌다의 표지가 된다. 갑판 위의 이방인이 인사를 한다.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넉넉해진 인심이 좋다.



핀란드 헬싱키 항구에서 오후 5시에 출항한 실야 라인은 아침 9시 30분에 스웨덴 스톡홀름 항구에 도착하니 젊은이는 밤새 호화유람선에서 즐겨서 좋고, 늙은이는 하룻밤 자고 나니 목적지에 닿아 있어 좋다. 현지가이드는 유람선에서 내리자마자 관광버스에 태워 스톡홀름 거리의 주요건물에 대한 안내를 한다.



외교관 공관의 거리, 강변 거리 등 구스타프 황제 몇 세에 이르는 채전밭이나 사냥터, 황제들과 관계된 건물이나 공원이 모두 관광 포인트이다.



게르만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스웨덴은 11세기 ‘바이킹 시대’라 불리는 전성기를 맞아 한 때는 러시아와 남프랑스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12세기 바이킹 세력의 몰락과 발트해의 한자동맹에게 경제권을 장악당한다. 13세기 중반에는 왕족의 정략결혼으로 덴마크를 중심으로 발트 삼국은 통일을 이루고 120여 년 간 덴마크의 지배를 받는다. 16세기 초 스웨덴의 귀족 구스타프 바사가 농민군을 앞세워 덴마크의 왕권과 칼마르 동맹을 해체시키고 17세기에는 구스타프 아돌프에 의해 독립국가로 발돋음하게 된다. 그는 교육과 내각제도의 혁신으로 근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하다.



스웨덴은 남북의 길이 1,600km, 동서 500km에 이르는 반도국가이며, 한반도의 2배에 이르는 땅에 인구는 남북을 아우른 인구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거리는 악대의 나팔소리로 넘치고 멜라린 호반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물위에 떠 있는 도시 스톡홀름은 인구 60만 명이 모여사는 숲과 호수와 유서깊은 건축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도시이다.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세르겔 지구와 과거 이 도시의 중심이었던 감라스탄 지구는 신구의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파리의 고풍스러움과 퀸즈랜드의 단아함이 돋보이는 도시이다.



유르고루덴 섬에는 구스타프 2세 시대에 만들어진 목조군함이 전시되어 있다. 참나무 1,000그루의 재목으로 13,500조각의 퍼즐로 짜맞춘 군함은 1628년 8월 10일 진수하였으나 1300미터의 처녀항해 끝에 침몰하고 말았다.



300여년간 심해 속에 묻혀있던 바사호는 고고학자에 의해 1961년 인양되었으며, 1962년 임시박물관에서 보호액을 뿌리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1988년 바사호는 새로운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90년 처음으로 바사호 박물관이 개관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호화군함으로 총 길이 69m, 최대폭 11.7m, 높이 52.2m, 배수량 1,210톤, 적재대포 64문, 탑승인원 450명에 이르는 당시로는 큰 군함이었다. 박물관은 이 귀중한 군함을 보존하기 위해 실내 상온 20°, 습도 60%, 조도 50룩스를 엄격히 지킨다. 군함의 전면과 양 측면은 형형색색의 섬세한 조각으로 장식되었으며, 이러한 호화스러운 위세로 적국의 군함을 압도하려 했던 것 같다. 멜라린 호수의 수문이 있는 곳에 위치한 시청사는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으로 106m 높이의 탑과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해마다 12월이면 세계의 이목은 이 곳으로 집중되며, 1901년에서부터 물리, 화학, 의학, 문학, 평화 부문에서 인류에게 기여한 공로자에게 수상을 한다. 다만 평화상만은 노르웨이에서 심사하여 수상을 하는데 이는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과거사를 사죄하기 위함이란다. 노벨 평화상이 존속하는 한,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의해 침략당하는 일이 없으리라.



1인당 국민소득 25,000불인 잘 사는 나라이면서, 소득의 40%에서 많게는 소득의 90%를 세금으로 낸다. 더러는 과중한 세금으로 인하여 국적을 옮겨 살기도 한다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라에서 책임지는 복지지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민주제도의 장점인 것 같아 부럽다. 산가는 유급으로 15주가 주어지며, 배우자는 한 달간의 유급휴가를 받는다. 실업률이 비교적 높은 7%에 달하며, 그 중 4%는 재취업을 위한 교육을 받으며, 나머지 3%는 취업을 포기한 알콜중독자와 정신질환자들이란다. 한 집에 개를 키우면 오물수거료로 10만원의 세금을 내야하고, 타인 소유의 산이라도 허가없이 이용할 수 있는 산림공동사용법이 있다. 서울의 하늘이 높은 습도와 매연으로 썩은 동태 눈깔같다면, 이 곳의 하늘은 소녀의 눈동자처럼 파랗다.



고국의 관광객에게 열심히 안내해 준 가이드는 팁을 받고 부끄러워한다. 의당 보수를 받고 얼굴을 붉힐 줄 아는 강은희씨는 현지인과 결혼하여 아이 셋을 둔 어머니란다. 먼 타국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을 만난 것 같아 기쁘다.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14시 35분 오슬로행 기차에 오른다. 7월의 뙤약볕에 보리가 익는 들판을 지나고 군데군데 푸른 하늘의 구름이 내려와 쉬었다 가는 호수를 지나 일찍이 알프레트 노벨이 발명한 티엔티로 뚫은 스칸디나비아 산맥의 터널로 들어선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이 보이고, 국경의 세관검사도 없이 21시 30분경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역에 도착하다. 저녁밥은 기차 안에서 김밥으로 때웠으니, 새삼 저녁 먹을 일 없어 좋다. 바다 가까운 레인보우 호텔에 짐을 부리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2002년 7월 16일 화요일 맑음



레인보우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에는 돛을 내린 요트들이 한가롭고, 새털구름 몇 점 떠 있는 맑은 하늘은 우리나라의 가을하늘 같다. 아침 8시 10분 관광길에 오른다. 우리들에게 바이킹의 나라로 알려진 노르웨이는 일찍이 대륙보다는 바다로 진출하여 한 때는 이탈리아 남부까지 세력을 넓혀 노르만 제국을 건설하기도 하였으나, 계속되는 왕권의 분열과 쇠태로 존망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19세기 말 칼마르 동맹(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삼국연합)에 의해 사실상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나폴레옹 전쟁이 프랑스의 패배로 끝난 뒤 프랑스 편에 섰던 덴마크의 지배에서는 풀려나지만 다시 스웨덴의 통치하에 놓인다. 그러나 스웨덴은 외교와 방위 이외의 자치력을 허용하여 노르웨이의 독립과 새 헌법을 인정하였으며, 20세기 초 민족주의 물결에 편승하여 완전한 독립에 이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침략을 받기도 했으나, 독일의 패망과 더불어 다시 독립국으로 출범하였다.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경계로 스웨덴과 접해 있으며, 북위 57°~71°선에 위치하며 북극권에 가까우나 멕시코만 난류의 영향으로 기온이 온화한 편이다. 국토면적 39만 평방킬로미터에 총인구 450만 명으로 GNP 35,000불인 북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다. 북해원유와 북해어장, 임산물과 비철금속(알루미늄 생산 세계 1위) 등이 국부의 자원이며,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은 뉴질랜드의 전원풍경과 록키산맥이 어우러진 풍경과 같아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수입이 GDP의 20%를 차지한다.



행정구역은 19개 주 424개의 지방자치 코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도시라야 10만 명 정도가 모여 살며, 대개는 100명에서 몇천명 정도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다. 방목업과 농업은 관광자원의 일부분으로 국가에서 장려하고 응분의 보상을 한다. 연간 평균 강우량은 28,000mm로 우리나라의 2배가 넘으며 산정의 호수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는 천혜의 자원으로서 공해없는 전력을 생산하여 이웃나라에 수출을 한다.



오늘의 관광코스는 오슬로에서 총길이 198km인 묘사 호수를 따라 릴레함메르까지 갔다가 트랫튼-링예부-헌트롯부-민스트라-옷다까지는 E6(유럽연합 6번도로)를 따라 가다가, 옷다에서 15번 국도를 따라 ‘롬’을 지나 피요르드가 시작되는 ‘게이랑에르’까지 간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영국에서 범선 한 척이 노르웨이 연안으로 다가와, 흑사병은 전국토로 만연되었으며, 트랫튼(13)이나 옷다(8), 헌트롯부(강아지)는 그 때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나 동물의 이름으로서 마을 이름이 된 비극적인 내력을 지니고 있다. 묘사 호수는 끝없이 이어지고 눈으로는 호수와 전원의 풍경을 보면서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서기 800년 ~ 1050년대에는 바이킹의 시대였다. 바이킹은 해안사람들이란 뜻으로, 그 시대 노르웨이에 살았던 불특정다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산전산후 유급 휴가가 2년간이나 주어져도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한 쌍의 부부가 한 자녀를 낳기도 어려운 세태가 되었단다. 유아는 만 2년간 엄마의 양육을 받다가 그 후 1년간은 탁아소에 맡겨지고 만 3세에 이르면 국영유치원에서 맡아 교육을 시킨다.



노르웨이는 내륙으로 갈수록 지형이 높아지며 90%가 산림지대이다. 산과 만년설과 호수의 나라로써 빙하로 만들어진 묘사호의 깊이는 400m에 이른다.



19세기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로는 입센(문학), 그리그(음악), 뭉크(미술), 비겔란(조각)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있으며, 입센의 <페르킨트>에는 그리그의 ‘솔베이지 송’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젊은 날 그 내력이나 음악의 국적도 모르면서 낭만에 젖어 불렀던 ‘솔베이지 송’은 그 전이 가사의 내용을 절실하게 담아냈기에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것 같다. ‘모란이 지고 말면’ 김영랑 시인의 한 해가 가듯, 짧은 여름이 지나면 세월이 가는 노르웨이의 산하, 젊은 날 꿈을 쫓아 헤매던 이국의 하늘에서 그리던 님, 그 님은 끝내 배반하지 않고 반겨주는 조국의 산하였다.



고속도로에는 도로를 따라 쇠그물이 처져있다. 늑대와 곰, 순록과 엘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레함메르 메인 스타디움에서 바라본 묘사 호수와 전원풍경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그 당시 릴레함메르 자치 코뮨은 공해로 인한 폐해를 염려하여 동계올림픽 개최를 반대하였다니 그들의 환경을 우선하는 생각이 부럽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서 쇼트 트랙부분의 선전에 힘입어 6위를 했었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겨울 스키대회를 준비하는 선수들이 잔디에 물을 뿌리고 푸른 하늘을 가른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트롤 인형을 마치 부적처럼 출입문에 매달거나 몸에 지니고 다닌다. 돌탑의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해학스럽게 생긴 노옹의 벙거지 쓴 모습같기도 하다. 어쩌면 돌탑과 ‘트롤’로 연관되는 동서양 사람들의 마음이 비슷한 데가 있어 보여 웃음이 나온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는 모두 입헌군주국이며, 게르만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칸디나비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며, 세 나라의 언어는 한 나라의 방언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독일의 종교개혁으로 루터파 개신교 신도가 94%에 이르며, 국가에서는 종교세를 받아 목사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니 감사헌금이 없다. 유아세례나 성인식은 반드시 치러야하는 통과의례이며 장례식은 교회에서 치른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적어도 세 번은 의무적으로 교회에 가야 하는 셈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으며, 묘지는 교회의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해발 1,000m 이상 중부산악지대를 지나 ‘게이랑에르’로 가는 길은, 볼거리가 많아 고개가 아프다.



깍아지른 산정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호수는 에메랄드빛에서 석회 볼드액의 부드러운 색으로 변한다. 올려다보면 만년설을 이고 있는 높은 산이요, 내려다보면 수정과 같은 맑은 호수라 누구는 환상특급이라 하고, 뒷자리의 여교수는 이 감동 감당할 길 없어 오늘 밤 잠을 못들겠단다. 가슴 깊은 곳에서 일든 흐느낌이 점점 커지면서 두 어깨를 들썩이고, 참으로 편안해진다. 예술의 극치는 순수함일진데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예술이다. 긴 폭포가 끊어진 자리에는 땅 속 발전시설이 있고 전선은 길게 산을 타고 내려온다.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가 끝나는가 하면 푸른 강물이요, 그 강물 닿는 곳이 또한 호수라, 하늘 아래 산이요, 물 아래 산이다.



노르웨이는 세계적으로 피요르드가 많기로 유명하다. 피요로드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번갈아 거치면서 녹아내린 빙하가 지표면을 깎아 만들어진 협만을 말하는데 내륙으로 깊게 바닷물이 파고 들어와 베르겐에 있는 송내 피요르드는 그 길이가 200km를 넘는다. 점점 이 눈 덮인 산정을 바라보면서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관광을 한다. 한 시간 코스의 깎아지른 산과 폭포와 바다의 마력에 빠져 시간을 잊는다. 내가 이 절경 속 실존하는 생명으로 보고 느끼는 것은 분에 넘치는 축복이라 누구에겐가 감사하고 싶다. 먼 길 돌아 일곱자매 폭포가 여름을 노래하는 게이랑에르 관광을 끝내고 19시 30분 로엔 피요르드 호텔에 체크인한다.















2002년 7월 17일 수요일 흐림



호숫가 새벽 갈매기는 보채듯 울며 날고, 건너편 로엔 마을의 광장에는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카라반 가족들이 마을을 이루었다. 유로화로 경제권이 하나로 묶이듯 생활권도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휴가철에는 유로 6번 도로나 16번 도로를 따라 경관좋고 쾌적한 노르웨이로 모여든다.



한 대에 8천만원 쯤 하는 카라반은 휴가철 이동주택으로 주차료 15,000원을 내면 수도와 전기시설이 갖추어진 광장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로엔 피요르드 호텔에서 8시 15분에 출발하여 골덴타운을 지나 ‘브릭스달’로 향한다.



오늘 하루 더 청명한 날씨였으면 좋을 것을, 비구름은 산정을 가리고 차창이 비에 젖는다.



브릭스달 빙하를 보기 위해 오르데다 렌 마을의 토종말 ‘휘오링’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산길을 오른다. 폭포수는 삼킬 듯이 포효하며 비수를 뿜어내고 산길 모퉁이 지친 말의 숨결이 가쁘다. 여름 한 철 하루에도 여남은 번씩 산을 오르내리는 말들이라 마부 아가씨는 이놈들 꾀느라 조삼모사로 손님을 싣고 간 도착지에만 먹이를 준다니 될 길을 상놈 가마 탄 것처럼 미안하다.



브릭스달 빙하는 요스데다르 빙하의 지류 중 하나이며 빙하의 넓이는 480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2500년 전 기후의 한냉화로 성장하기 시작한 빙하는 여름이면 녹아내리는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끝부분은 적어도 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녹아내린 빙하 계곡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얼음 한 조각 떼어내어 500년 전의 물맛을 보고, 이국의 늙은이가 손짓하는 빙하계곡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르고 내리는 좁은 산길에는 영어와 일본어로 된 팻말이 꽂혀있어 이 곳에서부터 빙하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유선형으로 깎여진 바위산이 그 흔적이다. 비는 개이고, 길가의 뗏집 위에 잡초가 무성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대개는 별장으로 이용하는 집들이란다. 방목하는 양떼들이 길을 막고 늘어섰다. 이들이 산야의 주인인 것을 누가 경적을 울려 그들을 놀라게 하랴! 비켜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들은 서서히 움직인다.



옛날 바이킹의 전설적인 주거지역인 ‘송달’을 지나, 버스는 폰데스 만힐러 지역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 도로는 끊기고 차는 페리호에 실려 송내 피요르드 협만을 건넌다. 산악도로는 어둑컴컴한 터널을 지나와 얼마 못가서 또 터널이다. 터널 안의 조명도가 낮은 것은 운전자의 심리적인 안전을 위해서란다. 6.3km의 장내 터널을 지나 라르달 코뮨에 도착, 바이킹 시대의 유물로 몇 개 남아있지 않은 1100년 경에 건축된 보르균스티브 교회를 구경한다. 5층 높이의 목조건물로 지붕은 바람 탄 돗대처럼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세계에서 가장 긴 24.7km의 라르달 터널을 옆으로 하고, 스키타운인 ‘햄세달’로 가기 위해 해발 1,137m인 산맥을 넘는다.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 앞에 감탄하기에 지친 관광객들은 졸고, 관광버스는 볼 일 없는 마을에 눈인사도 인색하다.



20대 초반에 노르웨이로 건너와 14년째 살고 있다는 30대 후반의 가이드는 사계절을 살아가는 이 곳 사람들의 모습을 시적인 표현으로 넋두리처럼 왼다. 7월을 지나 8월 중순이면 학교는 일제히 개학을 하고, 무성했던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면, 휴가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예사롭던 일상이 두려워 계절병을 앓는다.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따뜻한 지중해 연안으로 요양을 다녀와서야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름날의 꿈결같은 추억들을 잊을 때쯤이면 태양은 여우 낮짝처럼 모습만 보였다가 지고, 11월에 내리는 눈은 멕시코 난류성 진눈깨비로 이내 녹아버리고 만다. 본격적으로 눈이 쌓일 때쯤이면 거리는 징글벨 소리로 들뜨고 사람들은 서서히 생기를 찾는다.



1월은 스키시즌이라 가족이 함께 장거리 크로스 컨트리를 떠나거나 실내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즐긴다. 3월엔 황금같은 부활절 연휴로 10일간을 보내고 4월은 그 여세로 쉽게 지나간다. 5월 17일 헌법기념일을 기점으로 한 해의 여름을 알리는 각종행사가 벌어지고, 기다리던 여름은 사람들을 설레이게 한다.



노르웨이에는 교민이 약 300명 살고 있으며, 그들은 1970년대 파독 간호원으로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스웨덴을 거쳐 노르웨이에 정착한 사람들과 상사직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눌러 앉은 사람들이란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노르웨이 중부산악지대의 버스투어가 끝나고 세웠던 귀가 가물가물 멀어질 때 쯤 햄스달에 도착하여 노랜디아 호텔에 든다.



















2002년 7월 18일 목요일 흐림



새벽 산책길에 만난 까치가 반갑다. 참새떼는 빈 마당에서 짹짹거리는데 마을은 영화 세트처럼 조용하다.



아침 8시 30분 노랜디아 호텔을 출발하여 7번 국도를 따라 오슬로로 향한다. 노르웨이는 수난의 역사를 딛고 독립을 쟁취한 터라 2차 대전 후 중립국으로 남아 있을 수 없어 NATO에 가입하였으나 국익차원에서 유럽연합에는 가입하지 않고 아이슬란드, 스위스와 함께 유럽독립국가 연합인 EUS에만 가입되어 있다.



북해유전의 70%는 노르웨이 소유이며, 나머지 30%가 영국의 소유이다. 북해산 브랜트 유는 세계시장에서 가장 값이 비싸며, 세계5대 어장 중의 하나인 북해어장은 노르웨이 소유로서 만일 EU에 가입하게 되면 유럽연합국에 이 어장을 개방해야 된다. 북해어장은 대구, 연어, 알레스카 왕게, 고등어 등 등푸른 생선이 풍성했으나 고래, 물개, 바다사자 등 포유류의 증식으로 점차 수자원이 줄어들고 있다. 노르웨이는 바다와 내륙의 산악지방에서, 세계녹색환경단체에서 보호하는 동물들이 많아 갈등을 겪는다. 수자원을 늘리려면 물개나 바다사자의 수를 줄여야하고 농업과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늑대나 멧돼지를 없애야 한다.



노르웨이의 총인구 450만 명으로는 시장이 좁아 2차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어 공산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2차 산업으로는 유일하게 임산물을 가공하는 목재산업이 발달되었다. 국가정책으로 서비스나 IT산업에 주력하며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산업이 활성화되어가는 추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3.5배쯤 되어서인지 물건값도 3배 이상 비싸다. 생활필수품에 붙은 부가세는 평균 25%이나, 담배, 술, 휘발유 등 공해유발 상품의 부가세는 평균 100%이상이란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현대 소나타(1800cc)는 3,400만원을 호가하며, 반면에 의약품값은 싸다. 시민들은 수입의 33~35%를, 고소득자는 누진세가 적용되어 60~65%를 세금으로 낸다. 의사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며 개인의 진료비는 무료이다. 병원에 장기 입원하여도 완치될 때까지 국가에서는 월급의 80%를 보상하기에 가족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학비는 무상이며, 만 18세까지는 미성년이라 국가에서 장학금이 지급된다.



‘햄스달’을 출발한 관광버스는 ‘골’을 지나면서 7번 국도를 따라 아침 한나절을 달리다가 ‘흔네포스’에서 유럽 16번 도로를 만나 ‘오슬로’로 들어간다. 서기 400년 경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스칸디나비아 삼국은 바이킹 시대를 열고 서기 800년에서 1050년까지 최번성기를 누린다. 그 당시 스웨덴으로 상륙한 바이킹은 내륙으로 뻗어나가고 덴마크에 터 잡은 바이킹은 섬나라를 노략질하는 해적이 된다. 북극해연안 노르웨이에 상륙한 바이킹이 가장 진취적인 뱃길로 아이슬란드를 지나 지금의 캐나다영까지 진출하였으니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보다도 500여년을 앞서 신대륙을 발견한 셈이다.



오슬로의 바이킹 박물관에는 오세베르크 여왕의 호화유람선이 전시되어 있다. 여왕의 무덤안에 유람선과 부장품들이 함께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였다. 여왕이 타던 황금수레며 보석상자가 전시되어 있는 한 켠에는 타다 남은 바이킹 배가 전시되어 있다. 바이킹의 죽음은 땅 속에 매장되지 않고 배 위에 시신을 실어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 불화살을 쏴 화장을 하였으니 그 때에 타다 남은 배의 밑창 부분이란다.











바이킹의 십계명은...







●가능성을 가져라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져라







●질투와 이기심을 가져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행동에 책임을 져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라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항상 자신을 생각하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이다.















이러한 신념으로 무장된 바이킹은 영국원정에 실패함으로써 바이킹 시대를 마감한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바다를 낀 지리적 이점을 잘 살린 무역의 도시로, 중세에는 북유럽 무역상인의 조합인 한자동맹의 일원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도시이다. 470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50만 명이 모여 사는, 복합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현대도시이다.



도시 중앙의 프롱네르 공원에는 오슬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의 조각공원이 있다. 오슬로 시는 비겔란에게 320만 평방킬로미터의 부지를 주어 그의 계획대로 조각케 하고 일체의 경비와 연구실을 제공하였다. 그는 1869년에서 1943년까지 살았던 사람으로 공원 완성 1년을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공원입구에서 중앙의 ‘모노리탄’ 쪽으로 가는 ‘인생의 다리’ 위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희노애락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조각들이 있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엄마는 어린이를 번쩍 들어 얼레는가 하면, 어린아이는 엄마의 등말을 타고 웃고 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함을 삭이지 못하는 성난 소년의 조각은 하도 깜직해 몇 번의 도난을 당했단다. 다정한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고, 한 쌍의 부부가 둥글게 발목을 잡고 수레바퀴 되어 굴러가는 조각이 있는가 하면,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죽어가는 늙은이의 조각도 있다. 공원 중앙의 ‘모노리탄’은 높이 17m의 화강암 기둥으로, 121명의 남녀가 뒤얽혀 서로 정상을 차지하려고 애쓰는 인간군상을 조각한 것인데 물질주의의 문명사회를 경고하는 것 같았다. 121이란 숫자는 인간의 자연수명을 뜻하며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시청사는 오슬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건물로, 붉은 벽돌과 좌우의 사각기둥이 돋보인다. 해마다 12월이면 노벨 평화상이 이 곳에서 수여되며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제 99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오늘의 마지막으로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뭉크의 <절규>와 현대미술가의 조각과 회화를 감상하고 오슬로 항구에서 오후 5시에 출항하는 35,000톤급 DFDS-SEAWATS에 승선, 선상호텔에 체크인한다.















2002년 7월 19일 금요일 흐리고 비



해협은 잠잠하고 단조로운 엔진소리와 물이랑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 7시에 잠이 깨었으니 오래간만의 숙면이었다. 잠자는 동안 유람선은 물길을 갈아 이랑 끝에 닿았으니 얼마나 편한 여행인가!



9시에 코펜하겐 항에 도착, 덴마크 관광길에 나선다. 낙농의 나라, 바이킹의 나라로 알려진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로, 6~10세기에는 영국의 동부, 지중해 연안까지 진출하여 유럽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었다. 14~16세기 북유럽의 중심지였으며 정치적인 안정기에 들어선 14세기말에는 노르웨이를 합병하고 칼마르 동맹으로 스웨덴을 통합해 대제국을 이루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스웨덴이 독립함으로써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고,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 가담하였다가 프랑스가 패함으로써 덴마크는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통치를 마감한다. 그 후 고난의 역사는 계속되어 절대왕정은 무너지고 1864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덴마크를 침공, 덴마크가 패하게 되자 국토의 3분의 1을 프로이센에 할양하는 비운을 맞는다. 이 와중에 ‘달가스’란 선각자가 나타나 “피로써 잃은 국토 땀으로 되찾자”는 슬로건 아래, 농업을 근대화시켜 낙농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해 국운을 회복시켰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중립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2차 대전 중 독일의 지배를 받아 압박과 설움의 역사를 경험하기도 한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덴마크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창설 회원국이 되었으며, 지금은 유럽공동체에 가입하여 세계속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덴마크는 43,000평방킬로미터의 국토에 56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수도인 코펜하겐에 140만 명이 모여 산다. <코펜>은 상인이란 뜻이며 <하겐>은 항구란 뜻으로, 코펜하겐은 “상인의 항구”로써 서유럽과 북유럽을 이어주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덴마크의 국토에는 산이 없다. 높은 언덕이래야 해발 137m에 불과하다.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 국토 면적의 23%나 되며 시내를 관통하는 교통수단으로 운하가 있다. 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은 도로 중앙의 긴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다. 106m 높이의 시계탑이 인상적인 시청사 입구에는 코펜하겐의 창시자인 압살롬 주교의 동상이 서 있다. 핵물리학자 고어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맨하탄 계획에 참여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티볼리 파크 남쪽에는 안데르센의 동상이 서 있어 동화속의 향수에 젖은 어른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시청 앞 광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떠돌이 악사들이 자리를 잡고 트럼펫을 분다.



광장 건너 필립스 건물의 옥상에는 그 날의 기상에 따라 등장하는 캐릭터가 재미있다. 벽면에는 길게 온도계가 부착되어 있고 정상의 무대에는 쾌청한 날이면 자전거를 탄 남자가,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든 여자가 나와 있다.



오늘은 우산을 든 여자가 나와 있으니 우산을 준비해야겠다. 프레드릭 4세의 기마상이 호기롭게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덴마크의 역사에 획을 그은 군주이다. 국회의사당 출입구 위의 네 개의 흉상은 저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귀가 아프다, 이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등 민중의 고통을 헤아려 정사를 펼치라는 뜻이란다. 국회의사당 광장 으슥한 곳에는 실존철학의 대부 키엘케골의 동상이 그의 철학만큼이나 어둡게 서 있다. 이 나라 국회의원 총수는 그린랜드의 국회의원 2명을 포함하여 총 179명이며, 그 중 3분의 1이 여성이다. 소득세율 50%, 부가세 25% 등 고율의 세금을 징수하는 복지국가로서 75%의 어린이가 탁아소에 맡겨져, 여성의 사회활동이 철저히 보장되는 나라이다.



코펜하겐 대학교는 모스크바 대학교처럼 넓은 부지에 잔디밭과 수풀이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라 도심의 시멘트 공간에 갇힌 대학교로써 단과대학은 도시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안데르센이 생전에 사랑했던 늬하운 거리가 있는 바다로 향한 운하입구에 서 있는 생선장수 아내의 석상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의 망부석 같은 것일까?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 때 안데르센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코펜하겐으로 상경해 배우가 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독지가의 도움으로 대학교육을 무사히 마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833년 이탈리아 여행 경험을 살려 <즉흥시인>과 <동화집>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후로 동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대표작인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을 비롯한 1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이 작품들이 어린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그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어 있었다. “내 인생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다”라고 말한 안데르센은 1875년 고희를 앞둔 나이에 세상을 떠나니 전 국민이 상복을 입고 슬퍼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여왕이 살고 있는 아말리엔보리 궁전에 깃발이 나부끼지 않으니 여왕은 출타중이란다. 막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을 끝낸 병사가 곰털 모자를 쓰고 지나간다.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공원 입구에는 네 마리의 황소를 부리는 여신의 조각이 있다. 금새 황소의 코에서 콧김이 뿜어 나올 것만 같다. 땅의 신은 여신에게 하루동안 네가 경작한 땅만큼 준다고 하였으니 여신은 네 아들을 황소로 둔갑시켜 인어공주가 있는 섬을 얻었단다. 공원 밖 광장에는 처칠의 흉상이 고개를 숙인 채 시가를 찾는 모습으로 서 있다. 2차 대전 중 덴마크는 나치에게 점령당했으나 1943년 영국의 도움으로 독립을 얻게 되었으니 격전지였던 이 곳에 전쟁유물을 전시하고 자유의 광장이라 명명하였다. 마리 공주가 아기를 안고 있는 동상을 지나 바닷가 바위에 앉아 있는 인어공주 동상을 만난다. 우수에 젖은 인어공주는 떠나온 용궁이 그리워 바다만 내려다보고 있다. 인어공주 동상은 1913년 칼스버그 맥주 회사의 2대 회장인 칼 야곱슨이 <인어공주>연극에 감명을 받아 에드바르트 에릭센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였다. 안데르센보다 유명해진 인어공주는 그 인기만큼 수난도 많아 1964년과 84년에 머리가 잘리고 팔이 잘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으나 그 자리를 지키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덴마크에는 9,000여 명의 입양아가 살고 있다니 그들을 버린 나라의 어른들이, 오늘 아무렇지도 않게 관광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이 홍콩이며, 다음으로 도쿄, 러시아 순인데, 스칸디나비아 삼국도 특소세의 비율이 높아 물가가 비싸다.



안데르센, 키엘케골, 구룬트비는 동시대에 살던 사람으로써, 구룬트비는 어린이를 위한 복지사업의 선구자이다. 1921년 그를 기려 세운 구른트비 교회는 벽과 천장이 모두 벽돌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하얀 벽돌 하나하나를 하늘에 쌓은 정성이 놀랍다.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44km 떨어진 소도시 헬싱괴르에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무대가 되었던 코론보르성이 있다. 이 곳에서 스웨덴까지는 뱃길로 4km에 불과하며, 코론보르성은 이중의 요새로 성벽과 성벽 사이로는 넓고 깊은 수로가 성을 에워싸고 있다. 성벽에는 셰익스피어의 흉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성안에는 살해와 음모 등 인간의 욕망속에서 갈등하던 햄릿의 망령이 떠도는 듯한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햄릿>은 덴마크의 어느 왕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란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유명한 대사가 바다건너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까지 회자되었으니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한 셰익스피어는 영문학도들의 우상이다.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 중 제일 먼저 국기를 사용한 나라이다. 국기는 네모난 붉은 색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어져 있는데, 덴마크는 하늘이 내린 이 깃발을 앞세워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하여 스칸디나비아 삼국이 모두 십자가가 그어진 깃발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게 되었다.



초원에 핀 하얀 마가렛꽃이 손을 흔든다. 시내 중국식당에서 한국식 비슷한 저녁을 먹고 교외에 자리한 스켄딕 호텔에 들다.















2002년 7월 20일 토요일 흐림



새벽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린다. 언덕 위에 길게 늘어선 오렌지색 지붕이 어두운 하늘을 밝게 해 준다. 음산한 북구의 하늘 아래, 밝은 지붕의 색깔이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밝게 하리라.



새벽 6시에 문을 여는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7시 45분 코펜하겐 공항으로 이동하다. 서비스가 좋기로 이름난 세계 제일의 공항답게 검색원들은 친절하다. 국제공항이 있는 씨들랜드 섬은 스웨덴과 연육교로 이어져 있어 스칸디나비아 삼국이 한 나라인 셈이다.



10시 10분 모스크바행 ‘에어로플롯트’는 코펜하겐을 이륙하니, 아래는 회색구름이요, 위로는 파란하늘에 새털구름이 떠 있다. 저 멀리 구름의 평원에는 구름산이 피어오르고, 구름 사이로 코펜하겐의 작은 섬들이 멀어져 간다.



비행기 날개 위에 햇빛이 눈부시다.



눈을 감으니 지난 10일간의 여정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페테르스부르그 교외의 원시림을 지나, 핀란드의 초원에 황금 물결을 이루던 보리밭 풍경이며, 숲과 호수로 이루어진 공원같은 도시에 고전화 현대가 어울어진 스톡홀름을 떠올려본다. 산과 호수와 폭포로 이어지는 노르웨이의 자연은 경이롭고,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정은 제방없는 거대한 댐이었다. 빙하와 ‘휘오링’을 이끌던 소녀와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는 꿈꾸던 산하의 풍경이었다.



젊은 날의 밀린 숙제하듯 떠나온 러시아 북유럽 관광길, 무사히 마쳤으니 감사할 일이다. 받은 복 보듬어 소중히 가꾼 사람들이 관광길 함께 하였으니 모두 선택된 사람들로 건강하고, 돈 있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다. 가족과 함께한 젊은이들이 부럽다. 내가 만일 젊은 날에 이러한 여행경험을 가졌더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긍정적으로 영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기내에서 점심을 먹고, 러시아 북유럽 관광의 시발지인 모스크바 제 1공항에 도착하니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후 2시 15분이었다. 공항 터미널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길다.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적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여 잠을 청해보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 예까지 왔다. 1990년대 이전에는 ‘철의 장막’으로 굳게 닫혀 있었던 크렘린궁의 ‘붉은 광장’을 거닐어 보고, 르마노프 왕조의 화려한 ‘겨울궁전’과 분수가 아름다운 ‘여름궁전’을 관람하면서 피터대제의 바다로 향한 원대한 꿈을 생각해 보았다. 레닌의 깃발 아래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던 80년간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현장을 둘러보고, 풀어 놓은 인간의 욕망이 불러 올 인류의 재앙을 생각해 본다.



공항 면세점에서 마트리오시카 인형 몇 개를 샀다. 인형 속에 인형이 들어있어 10개의 인형을 모두 늘어놓으면 옛날 흥부네 식구처럼 올망졸망하다. ‘마트리오시카 인형’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하니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자식복을 제일로 쳤던 모양이다.



SU 599편은 오후 10시 45분에 이륙하여 동쪽 하늘로 향한다. 밤 11시경에 서편 하늘에 붉게 타는 노을을 기창 너머로 보았었는데 새벽 2시 30분에 해가 떠 오른다. 비행기는 해가 뜨서 동쪽으로 향하니 새벽이 빨리 오는가보다. 에어 포켓을 지나느라 비행기는 자갈밭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좌우상하로 흔들린다. 떠들썩하던 기내는 쥐죽은 듯 조용하고 웅웅거리는 엔진소리와 비행기 날개 끝에 바람을 가르는 금속음이 적막을 더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정의 끝은 허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안도감을 갖게 한다.











2002년 7월 21일 영종도 비행장에 무사히 도착하니 사랑하는 손녀딸이 반겨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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