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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4년 01-02월] 여행기 _ 녹우회(綠友會)의 그리스 기행 조회 618 작성일 2012-06-18












신비에 싸인 헬라로의 역사문화탐방....여행은 환상을 깨는 것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나는 13일간에 걸쳐 헬라(그리스)와 아나톨리아(터키)의 환상적이고 감동적이며 신비에 싸인 역사문화탐방을 마치고 돌아왔다.





2003년 8월 23일(토)



우리 대학동기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여행기록은 12년 전 하와이 여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벼르고 별러 계획한 여행길 인데 비가 오락가락하니 혹 비행기가 뜨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된다. 12시 정각까지 일행 12명, 전원 집합하여 2시 40분발 터키 항공에 탑승했다. 우리들의 인솔자 원여행클럽의 실장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입 출국증 기록이나 짐 명찰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큼해졌다. 점심을 놓쳐 배가 고픈 우리는 음식 가릴 것도 없이 기내식을 맛있게 먹었다. 두어 시간쯤 지날 무렵 창 밖의 풍경은 맑고 깨끗한 날씨에 좁은 산지를 조밀하게 계단경작하는 모습이 보이고 차츰 구획정리가 잘 된 넓은 평야지대를 지나 메마른 건천과 황토 산이 나타난다. 중국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며 이 나라의 무한한 잠재력에 다시 한번 감복한다. 카스피해 인듯한 큰 호수를 지난 후 비행기 창문이 모두 닫혀지고 잠을 자는 시간이지만 이런 저런 상념과 기대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드디어 비행12시간 만에 터키의 ATA TURK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간 저녁 8시반이다. ATA TURK란 이름은 터기공화국의 건립자로서 이 나라의 국부로 추앙 받고있는 케말파샤 장군을 기념한 이름이라 한다.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아테네 행 비행기를 바꾸어 타면서 만약에 안내없이 우리끼리 왔더라면  어찌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처음엔 인원이 12명뿐이라 우리끼리 가서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사장님과 우리를 안내해 주실 오 동수 선생이 늦은 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DIVANI ACROPOLIS 호텔에 여장을 푸니 자정이 다 되었다. 준비시간까지 거의 온전한 하루 24시간에 걸쳐 이 먼 곳까지 무사히 도착했음을 감사하며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2003년 8월 24일(일)



어제 너무 피곤한 관계로 오늘은 좀 늦게 출발하기로 했으나 6시에 눈이 떠져 미리미리 모든 준비를 마쳤다. 호텔 뷔페는 비교적 우리 입에 맞았고, 상냥하고 명랑하게 한국말 인사를 하는 지배인과 종업원이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오전 10시 젊은 기사 요르고가 운전하고 현지 가이드 페로도라 여인의 안내를 받으며 수없이 말로만 듣고 사진과 그림에서만 보아왔던 PARTHENON(파르테논) 신전을 향했다. 입구의 돌 계단부터 모든 길이 대리석으로 깔려 있는데 연 1,000여 만명의 관광객이 수 많은 세월을 밟고 스쳐간 이 돌계단은 닳고닳아 매끌매끌한 것이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러웠다. 첫번째 건물인 ERECHTHEION(에릭시온) 또는 디오니소스극장은 5,000여 명 수용가능한 거대한 음악당으로 BC 1680년에 건립되었으며 그 당시 극장과 회랑 등이 연결되었던 흔적이 남아있어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케 한다. 이 건물은 헤로디오디쿠스가 부인 사망 후 애도의 뜻으로 지었다는데 그 옛날에도 음향시설 없이 소리가 멀리까지 퍼질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 되었다고 한다.





훗날 터키의 지배 하에 있을 때 화약고로 사용되던 중 벼락으로 건물의 지붕 및 일부가 소실되었다니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46개의 기둥으로 되어있으며 기둥을 받치고 있는 돌 덩어리가 3톤~8톤짜리를 짜 맞추어 세웠다니 얼마나 놀라운 힘과 기술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았다. 밖에 세워진 기둥은 남성적인 도리아식이며 안쪽은 여성적인 이오니아식으로 되어있다. 이 건물 역시 터키의 화약고로 쓰일 때 베니스의 폭격을 받아 폭발되었다니 이 위대한 유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후손 모두가 부끄러워 해야겠다. 이 건축물의 설계에는 피타고라스의 수학공식이 응용되어 기둥들이 약간 안쪽으로 휘어있어 꼭지점에서 만나게 되어있다는데 이러한 원리 때문에 BC 337년 대지진에도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었다고 한다.  박물관 안에는 파손된 조각들을 실물의 사진을 통해 복원하거나 축소모형을 만드는 등 기록과 신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전시물 들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며 고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이 나라 사람들이 배타적인 면이 강하다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으니 배짱을 부릴 만도 하지. 어떻든지 이들의 선조인 옛 헬라인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사고력의 결집이 헬레니즘문명의 모체가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국력이 쇠퇴하여 이 자랑스러운 문화유적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이 나라 후손들은 다 무너진 돌더미와 기둥뿌리만 가지고도 관광산업의 대국이 되고 있으니 조상 덕을 톡톡히 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ACROPOLIS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들의 대부분은 파손되어 온전치 못했으나  얍상한 눈매에 오똑한 콧날과 하늘하늘 주름진 옷에 총총 따은 머리 등의 모습은 돌을 떡 주무르듯 자유자재로 만졌던 희랍인들의 솜씨를 다시 한 번 감복하게 했다. 나오는 길에 소요학파의 우두머리였던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을 돌아보며 그의 부인 산타페가 악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논하며 우리는 넌지시 웃었다.





파르테논 신전 건너편에 제우스신전과 비잔틴교회를 돌아보고 점심을 먹은 후 그 당시 학자들이 모여 설전을 벌렸다는  필로파포스언덕에서 AGORA광장을 둘러보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곳까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며 설교했던 사도바울의 용기와 열정에 감탄한다. 그가 설교했던 자리에는 사도행전의 성구를 돌판에 새겨 기념하고 있었다. 일행 중에는 벌써부터 몸이 지쳐서 오르내리는 언덕길은 아예 포기하고 그늘에서 쉬는 친구가 생기는걸 보니 우리의 기분과 달리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스친다. 오후에는 아테네 시내를 관광했다. 최초의 올림픽 경기장, 대통령 궁, 대학, 중요기관 등. 이 모두가 시내 가까이 인접해 있고 규모도 크지 않으며 길도 좁아서 오래 된 옛 도시의 풍모를 풍긴다. 주로 붉은 색의 지붕을 얹은 주택들은 터키시대의 조잡한 시가지와 전형적인 유럽형태의 시가지로 구분이 된다. 그리스 바자르는 살 만한 물건이 신통치 않아 GRECE 라는 역사 예술을 소개한 그림책 한권과 파르테논을 상징한 기념물 하나를 샀다. 모두들 지쳐서 노천 까페에 주저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쇼핑은 뒷전이다. 저녁식사는 양갈비를 주메뉴로 한국인이 대접하는 포도주 한잔씩을 곁들이며 포식을 했다. 저녁시간 씻고 갈아입고 성장한 모습들로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을 보기위해 밤길을 나섰다. 아까 본 음악당에선 한창 음악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고 건너편 디오니소스 까페에는 손님이 가득한데 우리는 2층 전망좋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앞에 보이는 신전은 밑에서 조명을 비추어 더욱 화려하고 황금 빛과 은백색의 화려한 모습은 낮에 본 모습과는 또 다른 신비한 장관이었다. 일행 중 친구 이명희가 자녀들로부터 거금의 여행경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오늘은 명희가 한턱 쏘는 날이라며 일부는 비싼 칵테일로 기분을 내는데 미쳐 그 소식을 모르고 먼저 주문한 우리 같은 소시민은 공금을 아끼려고 오렌지 주스 한잔으로 기분을 풀며 줄을 잘못 서서 손해본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 하면서 밤 늦도록 야경을 감상했다.





2003년 8월 25일(월)



호텔 뷔페는 늘 풍성하여 우리를 과식하게 한다. 밥하는 걱정 없이 먹는 기쁨도 상당한데 이것 저것 골고루 색다른 음식을 접하는 기쁨은 또하나의 매력이었다. 오늘은 8시에 출발하여 DELFI(델포이, 델피)로 향하는 날이다. 북으로 달리면서 페르나소스 산맥의 한 줄기에 해당하는 이곳 지형은 구릉과 산지의 연속이었다. 사이사이 저지대를 이용해 면화 담배 기장 등의 농작물을 재배 한다. 아테네 근교와 달리 이 곳은 땅이 비옥하고 농경지도 꽤 많이 분포하여 메마른 돌산 지대인  발칸반도 남단의 아테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가끔 양떼들의 모습도 나타나며 양젖을 이용한 치즈생산이 많아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금, 은, 철 등의 지하자원도 풍부하며 1,000여만의 재외교포가 역송금하는 수입과 관광수입이 국가의 경제력에 큰 도움을 준다는데 이 나라는 특히 2중 3중 국적을 허용하여 재외교포의 활동무대를 넓혀줌으로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는다니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국민소득 $12,000). 우리들의 안내자 오동수 선생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합쳐 10여년간 이스라엘과 그리스에서 공부한 박학다식하고 학구적인 신학자요 언어학자로 재미있고 자상하게 많은 것을 알려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알차고 보람 있는 여행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험산계곡을 굽이굽이 세 시간을 달려도 지루할 틈이 없고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 모두가 경이롭고 흥미롭다. 델피는 APIION의 별명으로 신탁의 요지로서 537m고도의 산지 위에 신전이 위치하고 있다. 멀리 고린도만의 푸른 물결이 바라보이는 전망이 좋은 이곳에 앙상하게 남아있는 거대한 돌 기둥 3개가 이 신전의 웅장하고 화려했던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할 뿐 주위엔 돌기둥을 받쳤던 흔적과 파손된 기둥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 스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가장 영험한 신전으로 알려져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고 당시에 받아들인 금은보화를 저장하는 보물창고가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이 신전은 고린도 만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 출입자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여 일어난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것을 2세기에  파우시스의 글을 통해 이 정도라도 복원이 가능했다고 한다.  위로 올라가면 대규모의 경기장과 관중석이 있다기에 땡볕더위에 숨이 차서 헐떡이며  올라가는데 급경사인 비탈에 야생무화과 열매가 대롱대롱 탐스럽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침을 삼키기만 했다. 신성한 이 곳에서 차마 손 댈 수 없어 그냥 스치고 지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오명자의 용기와 순발력으로 모두들 골고루 무화과 맛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먹은 무화과 열매 중 그렇게 맛있는 것은 전무후무 할 것이다.





과연 경기장은 출발점에 홀을 파서 출발 전에 미리 움직일 수 없도록 정확한 스타트를 할 수 있게 과학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관중석도 오늘날의 근대 경기장 보다 훌륭하게 설계 건축되어 있어 당시의 문화척도를 알 것 같다. 다시 내려와 박물관에 들러 세계의 중심 ‘배꼽’이라는 의미의 움파로스와 보완해서 전시한 몇 개의 정교한 작품을 보았으나  나머지 없어진 기둥과 조각들의 대부분은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강대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니 국가의 흥망성쇠를 한 눈에 보는 듯 하다.  내려와 점심을 먹는데 치즈가 많이 들어간 음식들이라 느끼했던 차에 박행자가 가져온 무말랭이 무침이 어찌나 칼칼하고 개운한지 인기절정 이었다. 그 후에도 오명자의 고추장 볶음과  우민자의 무말랭이와 장아찌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들 식탁의 효자 역할을 했다. 역시 우리 음식이 최고야! 차는 다시METEORES(메테오라)를 향해 험산을 S자 형으로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는데 젊은 기사 요르고의 운전솜씨가 아주 능숙한데다 구수하고 조예 깊은 오선생의 나긋나긋한 명강의는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실장의 풍성한 감성과 지성에서 나오는 재치있는 멘트는 오선생의 강의를 더욱 빛나게 하고 때와 곳에 따라 들려주는 멜로디는 더욱 감미롭다. 특히 헬라문화의 모체가 되고 있는 그리스의 수많은 신화얘기에 넋을 잃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으면서 기가 차게 오묘하고 재미있는 그들의 창작력에 수시로 감복한다. 이 지면에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은 이 기회에 그리스 신화를 읽을 여운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서실장은 어느새 이 나라의 유명가수 나나무스키와 멜리나멜리클리의 곡을 준비해 들려주며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 했다. 이 나라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기를 쓰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델피를 지나면서 요르고의 고향마을에서 그의 아버지가 아들차에 함께 타고 아들과의 상봉을 위해 메테오라까지 동행한 일이다. 부자가 상봉한지 4개월 되었다니 얼마나 보고 싶으면 지나가는 아들차를 함께 탔을까.  부모의 마음은 한결 같은 모양이다. 4시간여를 달려 메테오라 가까이에 아이콘 제작소가 있다 하여 잠깐 들르게 되었다. 성화를 제작하는 공정을 보고 각종 성화를 구경했다. 특이한 것은 염료에 계란을 섞어 색채가 오래 보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성화제작 전문 수도사가 검정 색의 긴 수도복을  입고 수염이 그대로인 채 성화를 그리고 색칠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덥고 답답할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멀리 높은 암석 산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게 보이는가 했더니 그 암벽 정상에 오똑하게 지어놓은 벼랑 끝의 아슬아슬한 수도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경이로움! 그 자체다.어떻게 저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저녁식사 후 피로도 잊은 채 내일 보게 될 그 수도원이 궁금해 호텔 뒷길을 산책하며 그리스인들의 서정적인 삶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함께 하고 있는 모습 등등. 이 나라는 낮에 더위를 피해 긴 낮잠을 자고 저녁시간 밤 늦게까지 주로 밤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어디서나 낮에는 조용하고 밤에 활기가 넘친다.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이 여름에 고온건조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뜨겁고 건조하여 하천마다 흔적만 있을 뿐 건천으로 물이 귀하고 더워서 낮에는 활동을 못할 정도일지는 미처 몰랐었다. 낮에 잠과 휴식을 취한 뒤 열이 좀 식은 밤에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03년 8월 26일(화)



메테오라의 원지명은 KALAMBAKA(깔람바까)라는 도시다. 메테오라란 별똥별처럼 매달려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은 신비에 싸인 절벽 위의 수도원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곳은 12~13세기 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수도사들이 전쟁을 피하고 하나님과 보다 가까워지기 위한 목적으로 암벽 바위 높은 곳에 수도원을 짓고 그들의 종교를 지킨 곳이다. 이곳 지형은 옛날 해저였던 곳으로 침식으로 인해 매끄러운 암석군을 이루고 있는데 각 암석의 꼭지점마다 수도원을 짓고 수도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부터라고한다. 한때는 20여개의 사원이 있었으나 18세기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어 현재는 6개(쪹스테파노 수녀원, 아기아뜨리아더 수녀원, 루사노 수도원, 메갈로메테오라 수도원, 예수님 변형 수도원, 발람 수도원)가 남아있다.



그 중에 발람수도원을 자세히 견학할 수 있었다. 특히 수도원 견학에는 바지가 허용되지 않아 모두 바지 위에 치마를 둘러 입고 들어갔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연결된 도로망을 이용하여 계단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나 그 옛날에는 이 곳에 들어가는 수도사들은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절벽과 절벽사이의 내부에서 농작물을 자급자족하며 끈으로 큰 주머니를 엮어 그 속에 사람을 넣고 도르레의 원리를 이용하여 오르내린 흔적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우면 도르레 앞 정면에 예수성상을 모셔놓고 기도한 후 움직였을까!  그리스 정교의 수도원은 천정과 벽면 전체가 아이콘으로 장식되어 있는 게 특징이며 돔형의 천정 중앙엔 반드시 예수상이 그려져 있고 바로 밑에 사제가 기도하는 자리로 되어있다. 어떻게 그 가파른 절벽 위에 그렇게 오묘한 건축물을 남겼을까! 마치 딴 세상 사람들의 행적인 것 같이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엔 페르시아 전쟁의 현장이었던 마라톤 평원을 들르기로 했다. 2004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로를 온통 파헤쳐 놓은 채 공사가 중단되어 길이 나쁘고 체증이 심해 예정보다 늦은 시간이지만 마라톤의 효시가 된 역사적인 현장을 밟는데 의미를 두고 우리는 달렸다. 아테네를 침공한 엄청난 규모의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사력을 다해 싸워 승리한 헬라인들은 그 승리소식을 전하고자 아테네까지 쉬지않고 달려가 승전소식을 전하고 그 자리에서  숨진 소년병 페이피데스를 기념하여 올림픽의 효시가 되었다는 역사적인 이 땅, 허허벌판에 서서 실장이 낭독하는 신영복의 선생님의 편지 “마라톤 평원에서”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전율을 느꼈다.



퇴근시간과 겹쳐 무척 쫓기는 가운데 발칸반도의 최남단 수니온곶에서 에게해의 일몰을 감상 하려했으나 햇님과 경쟁에서 한발 늦는 바람에 바다에 잠기는 해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여운으로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든 황혼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제우스의 버림받은 아들, 외로운 포세이돈의 신전 앞에서 오래오래  떠날 줄을 모르고 서성거리다가 일정에 쫓겨 마지못해 버스에 올랐다.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밤길을 달리는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밤늦게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된장국에 김치가 모두에게 활기를 불어넣었으나 제일 힘이 나는 친구가 김윤희다. 돌무더기 관광 때는 다 죽어가던 이 친구가 이제는 가장 힘있게 살아나는 모습에 오늘 밤은 모든 친구가 웃음꽃을 활짝 핀다. 이 식사를  끝으로 이젠 작별의 밤이구나.  그리스여 안녕!  아테네여 안녕!  







글 : 녹우회(綠友會) 홍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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